-
-
리바이어던
폴 오스터 지음,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리바이어던 Leviathan'이란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영원히 죽지 않는 괴물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17세기 영국 철학자 홉스가 지은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폴 오스터가 쓴 '리바이어던'을 다 읽은 지금에도 작가가 둘 중 무엇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폴 오스터가 가리키는 리바이어던이란 그 둘을 모두 합쳐 부르는 중의적인 의미도 될 수 있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제 3의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책 읽고 실망이란 걸 해봅니다.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데 상의 기준이 의심스럽습니다.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연한 사건을 차례로 겪습니다. 살인사건까지 포함한 그 사건이란 주인공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것이어서 주인공이 감히 이렇게 저렇게 현실을 극복해가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사건들이 주인공의 성격을 바꾸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합니다.
일상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을 소설로 다룰 때 작가는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9.11 테러라든가, 대구 지하철 참사같은 소재로 소설을 쓰면 글을 쓰는 작가나 읽는 독자들은 그 사건이 가진 힘에만 휩싸이기 쉽기 때문이죠. 사건이란 것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사건에만 무게 중심을 두게 되면 결국 우리는 소설책을 다 덮은 후 묘한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폴 오스터의 '리바이어던'이 바로 그렇죠. 폴 오스터는 주인공의 내면을 쫓아간 게 아니고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쫓았습니다. 주객이 전도됐습니다. 원재료보다는 조미료로 승부를 내려고한, 썩 좋은 요리는 아닙니다.
오스터는 삶이란 우연으로 이루어지며 그 우연한 사건이 사람을 얼마나 휘둘러놓는가에 대해 소설의 촛점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벤자민 삭스가 겪는 우연한 사건들이 그를 끝내 허무한 죽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으로 몰고갑니다. 그러나 벤자민 삭스가 겪는 사건들은 일상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 겪기엔 너무나 비일상적이고 비소설적입니다.
그 사건들이 일어날 법하고 소설적이 되려면 오스터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그 사건을 추적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터는 사건의 기술에만 너무 무게를 둔 나머지 그 사건으로 인해 변해가는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사건들은 모두 떨어져있고 그 사건을 겪는 인물들도 모두 파편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결국 '리바이어던'이란 소설은 이러저러한 사건의 기록에만 머물고 맙니다.
현실에서 소외된 개인을 그려낸다고 해서 폴 오스터를 카프카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가본데 제가 보기에는 잘 생긴 오스터의 외모말고는 카프카와 닮은 점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