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이렇게 썼으면 아, 유치해. 당장 집어치워. 말도 안 되잖아. 그럴 법한 이야기를 좀 써봐라. 이런 욕을 얻어 먹었을 게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홍세화 선생이 겪은 세월이 너무 거짓말 같아 소설로는 되려 사실감이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취직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파리 지사로 발령을 받지만 남민전 사건에 연류된 과거때문에 졸지에 홍세화 선생은 국제미아가 된다. 한국에 남아있던 남민전 투사들이 모조리 잡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욕조 딸린 방으로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감방신세 질 게 뻔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회사까지 망한다. 결국 오도가도 못하고 홍세화 선생은 파리에 남아야 했다.

남민전 사건이라고 해도 나야 그 세대와는 거리가 멀어 기억에도 없지만 남민전이란 말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니 연류되었던 인사들의 고초가 어떠했을까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남조선이나 민족이나 해방이나 전선 중에 한 단어만 써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가던 시절인데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굴비 엮듯 엮어 놨으니.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라...

그나마 프랑스에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똘레랑스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나라기 때문에 자신이 온전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 나라가 미국이라든가 일본이었으면 홍세화선생은 또 쥐도 새도 모르게 욕조 딸린 방으로 잡혀갔을지 모른다. 똘레랑스는 영어의 tolerance 즈음 되겠는데 우리 말로 풀이하면 '관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홍세화씨는 그 정도로는 풀이로는 영 만족 못한다.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남도 소중하고, 내 말을 들어줬으면 하기에 남들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고. 꼭 자로 재듯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할 게 아니고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 등등 복잡하다. 아무래도 3박4일이라도 프랑스를 다녀와야 똘레랑스가 뭔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여튼 망명자를 철저히 보호해준 덕택에 홍세화 선생은 프랑스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어쨌든 대학 동기들은 모두 외교관이다 장관이다 하다못해 교수다 하는 데 자기는 택시 기사들 돈치기 하는 뒤에 서서 담배나 피고 있었으니 그 심사가 오죽했으랴. 박정희씨하고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고, 생각 난 거 몇 줄 적은 종이를 하늘에 뿌렸다고, 머나먼 이국의 택시 정류장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다니.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신영복 선생이나 황대권 선생도 얼마나 기구한 삶인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개인은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정책이나 이념을 밀어부치는 나라는 늘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박정희가 겨우 권총 몇 발로 생을 마감한 게 어떻게 생각하면 참 복도 많은 인간이다 싶다. 그러면 전두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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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2020-11-02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