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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홀든 코트필드라는 주인공은 여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레트 버틀러처럼 잘 기른 콧수염에 터프한 젠틀맨은 아닙니다. 우수에 젖은 채 코트 깃을 치켜세우며 비오는 밤거리를 표표히 사라지는 중절모의 신사는 더더욱 아닙니다.
홀든은 16살 먹은 퇴학생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폭행하거나, 학교 기물을 파손했서 퇴학을 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공부가 싫어 낙제를 하게됐고, 낙제에 낙제를 거듭하다보니 퇴학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퇴학도 한 두번 당해본 게 아닌지 짐 싸는 일도 능숙합니다. 하지만 짐 싸는 일만 능숙할 뿐 홀든은 제대로 하는 게 없습니다. 예쁜 여자친구를 꼬드기는 재주도 없고, 싸움을 할 때 주먹 한 번 내지르지도 못합니다.
이런 한심한 주인공이 보따리를 다 싸놓고 기숙사를 나와 뉴욕 거리를 헤맵니다. 술도 마시고, 창녀도 부르고 (멍텅구리 홀든은 물론 용기가 없어 화대만 내고 여자를 돌려보내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다음날 낮엔 옛날 여자친구와 연극도 보고, 뭐 그런 짓거리를 하다가 그날 밤 결국 자기 집에 몰래 기어들어갑니다. 몰래 들어간 까닭은 아버지한테 들키면 맞아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들키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집에 들어간 까닭은 이 홀든이 자기 여동생을 무척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동생의 방문을 몰래 따는데 성공한 홀든이 방문을 여는 순간!
이 쯤에서 잠이 확 깨는 사건사고라도 발생해야 하는데 명작이 늘 그렇듯이 이야기 다 끝날 쯤에 촌스럽게 별 일이 생기고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홀든은 여동생과 잡담이나 하다가 다음날 여동생과 공원에서 만나 여동생이 타는 회전목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것도 소나기를 쫄딱 맞으면서.
이게 끝입니다. 싱겁지요? 싱거운 이야기지만 그래도 주인공만큼은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나도 나이를 조금 먹으니 이런 주인공이 좋습니다. 레트 버틀러같은 인간은 위화감만 조성합니다. 홀든같은 친구는 한 명쯤 있어도 괜찮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만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너무 훌륭하거나, 혹은 너무 악당입니다.
그런데 홀든은 만만해보입니다. 하는 짓이 꼭 내 대학시절과 비슷합니다. 부랑아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나 하고, 쓸 데 없는 일에 밤이나 새고, 그렇다고 대단하고 훌륭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나와 다른 점은 홀든이 나보다는 훨씬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홀든이기 때문에 거짓과 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이 정신없기만 합니다. 회전목마를 타면서 바라보는 세상처럼 홀든의 주위는 항상 어지럽습니다. 누가 정직하고, 누가 제대로 된 인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떠돌기만 합니다. 어쨌든 여동생이라도 홀든에겐 등불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어. 뭐, 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마크 채프먼이라는 인간은 이 소설을 읽고 존 레논을 죽였다는데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이게 이 책의 모토인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누구 아는 사람있으면 좀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