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아예 하지 마라고 사회적으로 규정을 해 놓은 행동규범일 것이다. 하지 마라. 하지 말라는 일을 <수많은 금기>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 상당히 매혹적이다. 금기는 달콤한, 욕망을 죽일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소설에서 대부분은 주인공은 30대 초반은 사내거나 나이든 사내, 어린 사내다. 하나 같이 짧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평균적 삶과는 다른 일상을 살거나 살고 싶어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혹 상식을 거스르는 일을 '생각'하지만 일부만이 행동으로 옮길 따름이다. 그 일부에 내가 속하고 안 속하고는 '선택'에 따른 것이다. 혹은 '운명'일 수도 있다. 내 속에는 <수많은 금기>의 주인공들처럼 기괴한 생각들이 꿈틀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은 일탈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역시 너무 충동적이다. 나는 용의주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 세상에, 현실은 이렇다.
호시 신이치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데 낯설지가 않다. 읽을수록 빨려들어가는 듯한, 좌변기에 물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문에 '보여주기'를 주로 사용하고 호시 신이치의 작품은 강렬하지만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비해 전혀 끈적대지 않는다. 오히려 경쾌한 느낌까지 든다.
<수많은 금기> 속의 주인공들, 현실과는 다소 떨어진 그들의 행동, 그들이 겪는 기괴한 일들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들이다. 물론 '해결책'(7~14쪽), '중요한 부분'(15~28쪽), '소년기' 등과 같은 단편들은 개연성이 대단하다. 언제든 그런 일이 내 주변에서,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한 청년', '인계받은 일', '아는 사람', '부자관계'와 같은 소설은 망상에 가깝다고 할까. 엉뚱하다. 실제 그런 일을 언제 어디서 과연 겪을 수 있을까, 허무맹랑하다. 그렇지만 터무니없다는 것은 아니다. 호시 신이치가 구사하는 문장에는 강한 힘이 있다. 읽을수록 빠져들어 마치 내가 이야깃속의 누군인 듯, 혹은 아니라 다행인 듯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인이 쓴 소설을 썩 내켜하지 않아 즐겨 읽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찮게 호시 신이이치의 책을 집어들었다. <금각사>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책장에 꽂아두고 한해를 보냈는데, 멀뚱히 그 책들을 올려다본다. 일본의 민족성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동경하고 있다는 것, 양가감정은 자학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창자를 가르며 영웅을 기리는 문화로 단순히 정의내리는 내가 과연 우리것은 얼마나 알고 있냐는, 횡설수설로 혐오감를 달래어 왔다. 이것 역시 하나의 금기일 것이다.
<수많은 금기>, 그 많은 단편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뜻을 단박에 꿰차기는 아무래도 지금은 어려울 듯하다. 30대 남성이 주인공으로 많이 설정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각각의 작품들이 비슷한 상황 하에서 인물들의 행동에 초점을 두고 묘사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며, 금기를 어겨가며 각 인물들이 느꼈을 불안은 또 무엇이었을지 정확히 정의하기에 나에게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많은 금기>는 짧지만, 내가는 좀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수많은 금기>로 여태 읽지 않았던 유형의 소설을 접했다. 확실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신선한 소설집이었다는 것이다. 소설이 무엇을 진실로 말하고자 했는지, 의도는 지금 딱히 한 문장으로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소설이 보여준 강렬한 인상은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