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 따귀 맞은 영혼들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심리학 관련 서적은 매력적이다. 읽고 있으면 이건 바로 내 이야기인데, 내가 이런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때때로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뜻밖에(?) 이전에 정말 감명 읽게 읽은, 그러면서도 상당히 울적한 감정에 휩싸였던 책 <따귀 맞은 영혼>의 글쓴이였다. 글쓴이 약력에 무심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혹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얼렁뚱땅의 유형인가. 땍도 없는 소리를 주워섬긴다.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에서도 나는 공감과 당혹함을 금치 못한다. 끌리면서도 일면 멀리 하고 싶은, 손이 가다가 멈추는 책이 내게는 '심리학 서적'이다. 너에게 닿기를 나는 소망할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시스를 '읽으면' 나는 마치 내 이야기인 듯 몰입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고, 주위 반응도 썩 호감은 아닌 것을 보면 '나르시스'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인물인가 보다. 그래도 종종 나는 '나르시스'를 흉내낸다. 자아도취가 없다면, 물론 자존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자기 최면이라도 있어야 몰인정한 관계에서 버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가져 본다. 특정 상황에서 뿌리까지 휘청이는 '자신'을 경험할 때 멀리서 메아리가 울리는(이명일 뿐이지만) 듯, 뒤돌아본다. 메아리를 경험할 때마다 고개를 뒤로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를 기대하는 심리일지도, 그러나 허망하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나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렇다. 그냥 욕심일 뿐이다.

 

2.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눈치'에 대해서 피력하고 있는 듯하다. 고래로 사람은 사람이 있든 없든 늘 한결같은 행동, 몸가짐이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데, 굳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야 있을까. 없는 곳에서는 그 공간에 마땅한 행동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즉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관계 심리를 다루고 있는데, 눈치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고, 어떤 행태로 인정받기를 원하는가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안정적인 자존감을 지진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관심과 인정을 긍정적으로 이용할 줄 알며 또 이를 즐긴다. 반면에 자존감이 약하거나 불안정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8/ 머리글)

 

  이 책은 나르시시즘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열등하고 의기소침한 방식이나 허세적인 방식'으로 구분하는데 '열등적인 나르시시즘'과 '허세적인 나르시시즘'이다. 극과 극은 상통하는가. 그러나 상극과 대면할 때 반응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유형에 내가 포함될 때에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당혹감을 경험하게 된다. 관계 속에서 '나르시시즘'이 어떤 형태를 띄는지에 대해서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자세히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쉽게 몰입된다.

 

3.

 

 늘 꿈을 꾼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저변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 '나'일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과연 있을까.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실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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