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 카렐 차페크 희곡 10대를 위한 책뽀 시리즈 4
카렐 차페크, 조현진 / 리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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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 로봇 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로봇 얘기를 꺼내기 전에, 로봇(Robot)이라는 말의 본뜻부터 알고 넘어가야겠다. Robot - 로봇은 체코어로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라는 뜻이다. 이미 우리 생활 전반에는 다양한 로봇들이 인간의 고된 노동을 대신해주고 있다. 빨래는 물론 자동건조까지 해주는 세탁기부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를 해주는 로봇 청소기도 널리 보급되었다. 로봇 청소기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꽤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신기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구와 벽을 알아서 피하고, 먼지 있는 곳을 찾아 혼자 청소하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람들은 무척 바쁘다. 돈 벌기도 바쁜데 잡일까지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그래서 잡다한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의 등장은 참으로 편리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과연 좋아하기만 해도 될까. 분명 우리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대신에 다양한 질환들이 생긴다. 의자에만 오래 눌러앉아 있어서 척추는 휘어지고, 성냥갑 같은 건물 속에 스스로를 가둔 창백한 인간들은 다양한 스트레스와 신경증, 두통을 호소한다. 직접 몸을 움직이고 땀 흘리는 참된 노동의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제 인간은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져서 고통을 느낄 일도 없어요. 그저 즐기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오, 이건 저주 받은 낙원이에요!

 

                ㅡ <제1막> 알뀌스뜨의 대사

 


   체코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카렐 차페크는 이미 약 100년 전에 로봇이 인류에게 미칠 해악을 우려했던 것 같다. 1920년에 씌어진 그의 희곡《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R.U.R》은 로봇과 인간의 필연적 대립을 통해 노동의 참된 가치와 인간 생명의 귀중함을 환기시키고 있다.

 

 

   로숨 유니버설 로봇 회사의 사장 도민과 임원들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로봇들을 세계 각국에 보급시키는 한편, 전쟁을 위한 군인 로봇까지 개발하기에 이른다. 인권연맹의 대표자 헬레나는 로봇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로봇 회사에 대항하지만, 로봇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는 세계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만다. 로봇 회사와 헬레나의 열띤 토론으로 이루어진 제1막이 끝나고 2막에서는 로봇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로봇들은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은 야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들은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인간들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로봇 무리를 선동한 라디우스의 대사는 충격적이다.

 


   만국의 로봇들이여! 많은 인간들이 쓰러졌다. 공장을 손에 넣은 지금, 우리는 전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인류의 시대는 끝났다. 로봇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ㅡ <제2막> 라디우스의 대사


 

   그리고 제3막. 지상의 모든 인간들은 로봇에 의해 사라진다. 아니, 알뀌스뜨만 빼고. 로봇들은 번식과 영원한 삶의 비밀을 알기 위해 단 한 명의 인간 알뀌스뜨를 남겨둔다. 알뀌스뜨는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닮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들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지키려는 고결한 마음, 즉 '사랑'을 품은 로봇들에게 그들만의 낙원을 찾아가라고 이르는 알뀌스뜨. 그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자연이여! 생명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오! 친구들, 헬레나 여사! 생명은 사라지지 않을 거요! 생명은 사랑과 함께 다시 시작될 거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사막에 뿌리를 내리겠지! 그 생명들에게는 우리가 만들었던 모든 것, 마을과 공장, 예술, 철학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겠지. 하지만 생명의 불은 타오를 거요! 단지 우리들만 사라져 갈 뿐이지! 우리의 건물과 기계들은 낡아 망가질 테고, 우리가 만들었던 위대한 체계들도 낙엽처럼 떨어지겠지. 그러나 오직 사랑만은 이 폐허 속에서도 꽃을 피우리라! 그리하여 생명의 작은 씨앗을 바람에 실어 보내리라!

 

                                  ㅡ <제3막> 알뀌스뜨의 마지막 독백

 


   알뀌스뜨의 마지막 독백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불행과 해악. 만물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인간의 아둔함과 위험한 욕망을 환기시킨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귀중한 생의 가치들과 잃어버린 인간성을 돌아보게 해준다.

 

 

   아까 하다 만 로봇 얘기를 해야겠다. 로봇의 어원에 대한 얘기.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라는 뜻의 이 말은 카렐 차페크의 본 작품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로봇(Robot)'이란 말의 유래가 된 작품인 셈이다.《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진짜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구상되었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로봇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로봇과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그 생각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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