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 나쁜 여행, 이상한 여행 - 론리플래닛 여행 에세이
돈 조지 지음, 이병렬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길 따라 마음 따라 무작정 걷기를 좋아한다. 걸으면서 알았다. 비슷비슷한 풍경이라도 제각각의 멋과 맛이 있다는 것. 마음을 열고 눈을 뜬 자에게만 그것은 제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을 말이다. 집 주변 들판을 산책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새로운 풍경과 만날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마음을 조금만 달리 하면 언제 어디서든 색다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은 장소보다는 여행하는 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고 긴 휴가를 얻는다고도 한다. 물론 미리 마음에 두고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그것도 좋다. 그런데 여행지가 정해져 있는 경우 유의할 것이 하나 있다. 미리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말 것. 많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유명 여행지라도 내 식대로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면, 전혀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기치 못했던 난관이나 즐거움, 사람들과의 만남이 진짜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내 생애 가장 좋은 여행은 스무 살 되던 해에 떠난 자전거 여행이었다. 때는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볕 아래 길고 검은 아스팔트 길이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 화인(火印)을 찍기라도 하듯 나는 그 뜨거운 길에 내 청춘을 새겨넣었다. 길은 끝이 없었고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뜩해지기까지 할 정도. 그런데 그때 나는 힘들다는 생각을 안했다. 가슴 한가득 무언가 꽉 차 있는데, 그것들이 바람 따라 하나씩 풀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살면서 완전한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들 중 하나로 나는 그 해 여름의 여행을 꼽고 싶다. 동시에 그것은 이상한 여행으로 기억된다. 기억 속에서 그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어서, 실제로 내가 그 망망한 길 위에 있었던 것인지 가끔은 의심스럽게 생각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 여행은 청춘의 열정이라면 열정이지만, 미련하다면 미련했다. 그 여름에? 거기를? 뭐? 자전거로? 주변에서 한결같이 이런 반응들을 보였지만, 역시 나에게는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어떤 여행이라도 잊지 못할 기억 한두 개쯤은 남게 마련이다. <좋은 여행 나쁜 여행 이상한 여행>에는 여행작가 31인의 각색각양 여행담이 담겨 있다. 다양한 여행기를 읽어보았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매력적인 여행담은 처음이다. 여행의 우발적 성격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죽음의 길을 달려 도착한 인도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카자에서 유서 깊은 사원이나 불교유적, 하다 못해 독실한 불교신도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던 롤프 포츠가 거기 묵는 동안 했던 유일한 일은 미국 포르노를 보는 일이었다. “서양인들은 다 저렇게 해요?”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는 주민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며칠 간격으로 온다는 버스에 올라탄 그는 “깨달음 비슷한 걸” 얻긴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여행하기 전에 여행지에 대해 섣부른 기대를 하지 말 것. 아마 그는 이 귀중한 진실을 깨우치지 않았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담은 에드윈 터커의 이야기이다. 에드윈 터커는 자전거 여행 중 티베트 남서부 고원지대를 지나다 양 치는 원주민과 마주치게 된다. 그에게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마지막 펜 한 자루가 있었다. 모두 선물하고 남은 그 마지막 한 자루를 그는 여행의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티베트의 원주민이 그 펜을 탐 내었다. 인사부터가 “헬로우, 펜!”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줄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여행의 귀중한 기념품으로 가져갈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원주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자신의 양과 펜을 맞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에드윈은 설마, 그냥 하는 말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원주민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해서 양과 펜을 맞바꾸게 되었지만, 자전거를 몰고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진 그가 양을 데려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해서 양도 잃고 펜도 잃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언뜻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 같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헬로우, 펜!” 하고 다가오는 원주민과 언제 어디서 마주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 기억에서 가장 나쁜 여행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이다. 시간표대로 정해진 장소에 가서 정해진 시간 동안 눈도장만 찍는 일이 참 지루하고 시시했다. 그때 찍은 사진 몇 장, 거기 서 있는 나는 무척 피곤해 보인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재미없는 얼굴을 하고 있나, 새삼 놀라울 정도이다. 누구나 저마다 꿈꾸는 ‘좋은 여행’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꿈과 현실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다. 그래서 삶은 더욱 매력적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도 지나고 보면 넉넉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 책에는 흔히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여행담이 가득하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쯤에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준비됐어요?”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아뇨, 하지만 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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