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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법칙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1.
<거리의 법칙>.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 두 개를 사용하고 있다. 거리, 그리고 법칙. 나는 이 두 단어에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는 사실을 이 책 <거리의 법칙>을 읽는 동안 비로소 깨달았다.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청춘에 즐겨 읽던 소설이 이제는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별난 일이다. 책장을 넘기며 주인물이나 주변인에 매료되어 때때로 동일시를 경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청춘은 아주 멀어져 버렸다는 것 말고도 또다른 분명한 이유는 이제는 이야기보다 삶이 더 기괴하다는 것을 체험했고 또 하루하루 그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소설은 더 이상 삶보다 자극적이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2.
<거리의 법칙>은 적어도 내게는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참 오랜 만에 느껴보는, 별난 소설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소설로 명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본'(나는 이 이름이 좋다. 뼈다귀해장국이 연상되는, 채피의 팔죽지에 새겨진 문신에서 따온 이름, 뼈다귀)의 삶이 보통이라 일컫는 평균치의 사람들에게는 사실 경험하기 힘든, 별난 일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 추위에 조금만 더 골목을 들어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누군가'가 바로 본이라는 사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이 경험하는 세상, 즉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일부는 히피족이나 아동 포르노 제작자들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또 일부는 아이맨처럼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기도 하며, 또 일부는 가족이라는 허울 아래에 지극한 무관심으로 본과의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3.
<거리의 법칙>에서 '본'은 몇 개의 성장점을 지니고 있다. 로즈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아이맨을 스쿨버스에서 만나는 순간이 특별히 인상 깊다. 이 두 사람과의 '본'은 이기에서 타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이고, 행동한다. 남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러나 인위가 아닌 자연으로 남과 어울릴 수 있는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사람과의 본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들 속에서 보인 '본'의 모습은 참으로 '자유'였다.
양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그들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본'이 경험하지 못한 삶의 진정성을 '본'은 거리에서 경험한다. 우연이라 할까. 그렇지 않다. 본이 경험한 로즈와 아이맨은 그 자신이 얻어낸 참 자유였다.
<거리의 법칙> 중반부에 양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린 채피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본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 비로소 이 소설의 전반부가, 채피의 불량한 행동이 어디서 기인했는지가 명확해진다. 나쁜 행동을 하는 채피는, 본은 선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희망을 갖게 하는 배려를 작가는 농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서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4.
여태 살면서, 기억나는 사람이, '존경'이라는 이름에 오버 랩되는 얼굴이 있는가. 있을까.
삶은, 처한 환경이 아닌 어떤 대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진정한 주인공을 결정짓는다. 피동적이었던 삶에서 '본'은 신선한 자극을 나에게 선사하였다. <거리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