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술가의 탄생 - 예술가의 창조력을 일깨운 뮤즈 이야기
유경희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세상, 예술과 일상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세상, 도처에 예술작품은 너무 많지만 진정 흥미로운 예술가는 실종된 세상이 되었다. 특히 우리의 상황이 더욱 그러하며, 미술은 그 장르의 특성상 더욱 그러하다. 미술은 그 어떤 예술장르보다 물질적인 것으로 언제라도 맞바꿀 수 있는 교환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이중으로 유혹에 노출된 셈이다. ㅡ 6쪽, 들어가는 말)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그의 자서전을 구해 읽은 적이 있다. 작품만큼이나 그의 자서전은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아, 이런 것이 예술가의 감성이구나. 달리의 괴짜 같은 행보를 따라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늘날에는 예술도, 예술가도 너무 많다. 잘만 하면 예술해서 돈도 많이 번다. 이제 예술은 수많은 직종 가운데 하나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예술해서 돈 벌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서만 이용하는 것 같은 일부 예술가들의 행태가 불편하고 우려될 때가 있기는 하다. 예술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현실도 씁쓸하다. 예술가는 시대가 만든다고 한다. 진정한 예술정신이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사랑을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 없었다면 내 노래들도 없었을 겁니다." 주옥 같은 곡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장발의 가수가 언젠가 TV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예술적 모티브가 되어준 것이 '사랑의 감정'이었다는 말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표출해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에게는 그것이 외부의 것이든 내부의 것이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경희 씨는 "예술가들의 창작 욕망에 불을 붙이고 고무하는, 즉 상상력과 영감을 고취하는 존재는 그 무엇이든 막론하고 뮤즈"라 이름 붙인다.《예술가의 탄생》은 사랑, 사람, 삶의 전환기 등 예술가에게 '뮤즈'가 된 것들을 중심으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조명한다.
로트레크의 예술과 인간성을 이해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단서가 바로 가장假裝 취미이다. 현재 남아 있는 로트레크의 사진 중에는 기묘한 변장을 한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각 실행에 옮겼던 그는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여성으로, 때로는 사무라이 모습으로 변신한다. 이런 기질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탈자아적 욕구이며 동시에 육체적 장애에 대한 은폐이기도 하다. 쾌활하고 유머러스하며 사교적인 성격도,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육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것 역시 가장의 일종인 셈이다. ㅡ 124쪽)
키 작은 화가 로트렉의 짧고 불우한 생애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에게 가장假裝 취미는 자신을 벗어던지려는, 즉 자기자신이기를 거부한 몸짓이었다는 내용은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왜소증이었던 로트렉의 '탈자아적 욕구'가 단연 그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 같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사랑과 예술을 놓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야생의 삶을 택했던 고갱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창조의 근원이 되어준 것이 바로 '탈자아적 욕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려는 로트렉의 몸짓이나 예술에 장애가 되는 환경을 내던지고 야생의 삶을 택하는 고갱의 공통점, 그리고 수많은 장애나 난관을 극복한 예술가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탈자아적 욕구', '탈현실적 욕구'가 없었다면 그들 예술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예술가의 탄생》은 조금 특별하고 기이하며 지난한 예술적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예술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가 간접적으로 묻고 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깊이있게 파고들어주었으면 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쉽다는 말이다. 그들 생애와 작품은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별하거나 기이한 예술가들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싶다. 그들이 세상을 향해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