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EIC 레벨순 영단어 2000 - 시험에 자주 나오는
하레야마 요이치 지음 / 제이플러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얄밉게 생긴 녀석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공부는 못 해도 자존심은 늘 터무니없어서 녀석이 백점 맞는 영단어 시험이라면 나도 못할 것 없다는 용심을 내며 나도 구입한 것이 단어집이었다. 물론 단어집은 며칠 못 가서 내 손을 벗어났다. 집 어느 구석에서 몇 달째 처박혀 곰팡내를 풀풀 풍기다가 아버지 눈에 포착되어 부리나케 도망쳐 나왔던 기억도 있다.

 

   천마총 주변을 걷다가 멀리 노랑머리 여인네들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며 설마설마 혀끝을 차며 앞으로 걸었던 적이 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심박동은 쿵쾅쾅쿵 지축을 뒤흔드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첨성대가 인쇄된 리플릿을 내보이며 어디냐고 묻는 그네들의 말이 아득이 멀어지고, 눈앞은 새하얀 눈밭이었다.

 

   아뿔싸 닥치고 나면 그때서야 준비 못한 것을 탄하는 이런 몹쓸 인생.

 

   제대로 된 외국어 하나 구사할 줄 모른다면, 차라리 우리말이나 잘하자며 국어사전을 독파하던 20대 초반 그 시절은 그래도 도망칠 구석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30줄에 접어들어 더 이상 피해다닐 명분이 없다. 우리말글에도 영 젬병이라 도무지 잘하는 것은 비아냥이고, 남탓이라 이제는 외국어를 좀 해야 않겠나는 생각에 봉착하고 만다.

 

   이런 난관에서 나는 이 책 <시험에 자주 나오는 TOEIC 레벨순 영단어 2000>을 만나, 몇 날 며칠을 딴에는 공부합네 하면서 지내고 있다. 공부라는 것이 늘 그렇듯 조바심이 가장 큰 적이다. 십수년 동안 낙오와 좌절로 점철된 공부인생을 개선할까 싶어 이 책은 제법 여유를 부리면서 읽어가고 있다. 2000 단어가 수록되었다는 이 책, 과연 2000단어까지 되나 싶을 정도로 행간은 널찍하니 가독성이 높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읽어갈 수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초두에 각기 실력을 점검하고 단계별로 어휘를 점검하고 익힐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는 이 책의 구성은 나처럼 비일관적인 학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균형적인 어휘를 제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몹쓸 인생이라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영단어 2000>을 집어든 것은 아무래도 아직은, 그래도, 의욕이 남았음에 분명하다. 늦었다 생각하는 분들, 그 속에 내가 있다. 그리고 <영단어 2000>이라는 다소 부담이 적은 영단어집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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