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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꿈 맨발의 여행자 - 낯선 이름의 여행지 동티모르의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달콤한 이야기
박성원 지음, 정일호 사진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1.
여행은 목적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여행은 계획되지 않고 떠났다가 길 위에서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도, 돌아오는 길에는 또 우연찮은 여행을 상상하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귀환이 전제되어 있는 떠남은 바로 행복이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계획한다면, 혹은 무목적을 목적으로 하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대심리의 작용이 크지 않을까 싶다. '남는 것, 혹은 얻는 것'이 없다면, 결국 여행은 헛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고 참혹한 허무감이 엄습할 것이다. 남의 이목에 신경이 쏠린 사람이라면 여행 경비를 따져보며 웃기도, 인상을 쓰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할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긴 여행은 결국 삶이다.
2.
<맨발의 꿈, 맨발의 여행자>. 이 책을 알기 전, 방을 뒹굴면서 주말에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동티모르로 간 축구감독,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냈다는 이야기. 같은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느끼며 영화 소개에 관심을 가졌다. 만약 내가 글쓴이처럼 타지에 가 있었다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전에 가이드까지 둘 정도였다면 김신환 축구감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갔을 게 분명하다. 글쓴이는 그의 족적을 살피면서, 어떠했을까. 확실치는 않지만 행간에 느껴지는 감정은 '자부심'이었다.
3.
동티모르, 하면 생각나는 것이 우선은 '전쟁'이다. 글쓴이도 조선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며,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동 티모르의 현 실정에 대해서 '동정'한다. 이것이 이 책의 성격, 즉 여행기라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일면 글쓴이의 인간적인 모습을 반영하고 있고, 일면 이 책의 한계를 알아챌 수가 있다. 제삼자의 눈은 때때로 차갑고, 때때로 너무 감성적인 경향을 띈다.
시각, 음향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나는 이 책의 구성이 좋았다. 글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 좋았다. 읽기보다 '보기'에 더 익숙한 탓이다. '보기'는 '읽기'보다 인지가 빠르고, 상상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행기에서 '보기'는 철저히 '읽기'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제한될 뿐이다. 사진이 어둡다. 문장이 차분하고 감성적인데 비해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사진들과 동 티모르 사람들의 거무틱틱한 살빛이 아마 글쓴이가 의도한 사진일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본다. 초두의 글쓴이가 동 티모르의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어조는 이러한 사진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동 티모르의 '내일'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역사에서 미래는 반드시 과거보다 훨씬 나은 내일이라고 절대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인간은 꿈꾼다. 그래서 자주 착각하게 되나 보다. 글쓴이의 책에서는 동 티모르의 내일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얼핏 추측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다.
4.
여행은, 우연이어도 좋다. 길 위에서 얼마나 지치고 매말랐는지, 그것은 잠깐이다. 추억은 늘 다르게 적힌다. 여행은 새롭게 해석되고, 퇴비처럼 오래 묵힐수록 빛이 달라지낟.
동 티모르, 불운의 역사만을 가볍게, 남의 나라 신문기사로, 혹은 뉴스 앵커의 밍밍한 어조로 접했던 동남아의 한 약소국. 어쩌면 해방된 지금은 과거를 떠올릴 수 있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일지도 모르겠다. 한 세기 전 조선조 말 제국주의 국가에 침탈 당해 이제는 기억 속에 잊혀진 약소국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 나라를 떠올리게 되었다. 유구(琉球) 왕국. 오키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