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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 혼자면 둘이, 둘이면 혼자가 되고픈 당신에게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고독(孤獨)이란 말은 '외롭다'라든가 '쓸쓸하다', '적적하다' 같은 말과 달리 강렬한 포스를 풍긴다. 그것은 뭔가 굉장히 촌스러운 것들을 연상시킨다. 낡은 바바리코트와 떨어지는 낙엽 - 시몬 어쩌고 하는 시도 떠오르고 - 같은 것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씹어대서 너덜너덜해진 '고독'은 이제 싸구려 다방커피 맛이 난다. '철이'와 '순이'처럼 흔하게 널린 게 고독, 정확히 말하면 고독의 이미지이다. 그 우스워진 이미지 때문에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종종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지난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탤런트 최민수 은거(隱居) 사건이 좋은 예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옛날 잘나가던 탤런트가 미치광이가 되어간다고 수군거렸다. 한편에서는 연출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 씨에게서 본 것은 광인 아니면 사기꾼이었다. 그들은 최 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폭행시비에 휘말렸다고 가족과 세상을 등지고 산중 움막에 들앉는 태도는 대중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고독' 하니까 최 씨의 사건이 떠올랐다. 이제는 산을 내려온 최 씨가 그때 어떤 심경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수도자 같은 모양으로 산중 움막에서 명상을 하던 그의 모습은 굉장히 '고독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바바리코트나 낙엽 떨어지는 소리 같은 싸구려 고독 말고 진짜 고독 말이다.
잡말이 길었다. - 서평을 쓰다보면 종종 내가 서평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하는 순간이 있다. 헤헤 ^ ^a - 이 책의 저자가 잡말이 많다고 투덜댔지만, 나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평소에도 말이다). 우리는 왜 잡말, 잔말들이 그리 많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리는 잡스러운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가. 그리고 갑작스러운 적막감에 놓여지면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니까 . . . . . . 얼버무리는 사람들에게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 - 이하 '마자'라고 하겠다 ^ ^; - 는 일침을 가한다.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게 속에 있을 때 엄습한다.
군중 속 고독. 사회적 동물이니 뭐니 하던 사람들도 분명 공감할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롭다고 역설하는 마자 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산다. "혼자 살면 무섭지 않으세요?" 외떨어진 시골 농가에 혼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말을 던진다고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책에 대고 똑같은 질문을 했으니까. 마자 씨는 그런 질문을 비웃으면서, 사람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느낌'이라고 받아친다. 마자 씨는 책에서 '고독'은 실제로 혼자 있는 것, 그리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 '느낌'이라고 구별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같은 뜻이지만, 마자 씨의 구별법을 따르면서 읽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고독'과 '외로움'의 '이미지'는 차이가 나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마자 씨는 수다스러운 '고독 예찬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많이 수다스럽다. 마이.
내 낡은 오두막은 새근새근 잠든 짐승첢 엎드려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나지막하게 코를 곤다. 바람마저 지는 날, 산속의 고요한 밤은 저 먼 마을에서 건너온 소형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에도 베어 상처가 난다.
초반부는 상당히 좋았다. 시골 오두막의 정취와 마자 씨의 차분한 고독이 잘 어우러진 문장이 매혹적이었다. 아쉽게도 그것은 잠깐이었다. 자기의 경험을 살려 '고독'에 대한 정서를 전달하는 초반부를 지나고부터 마자 씨는 추상적인 문장으로 책을 가득 채워나간다. 거기에 더해 '촌스러운 고독의 이미지' 중 하나인 고독고독고독 노래부르는 것 같은 시나 문장들을 인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인용문들은 너무 자주 등장해서 독서의 '흥' - 콧방귀를 말하는 것은 '결코', '절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강아지 전문이다 - 을 깨뜨린다. 약간 산만한 마자 씨의 수다를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마자 씨가 많이 외로워 보여'.
고독이든 외로움이든 결국 자기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얘기를 마자 씨는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때로는 마음가짐만으로 해결 안 되는 것들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없을 만큼 생계가 바쁜 사람들도 있고, 혼자 있으면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신경쇠약 환자도 있다. 몇 백만년 동안 혼자 있어서 고독이라면 지긋지긋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연히 같은 공원 벤치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노신사는 내게 말했다. "다들 죽어버렸다오."
다들 죽어버렸다오. 노인의 한마디는 긴 여운을 남긴다. 최근에 본 인간극장 재방송에서 한때 타짜였던, 지금은 농사 짓고 고기 잡으면서 살아가는 아저씨에게 출소한 옛 동료가 "이렇게 살면 외롭지 않습니까, 형님?" 그러니까 타짜 아저씨가 말했다.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 떠나는 거라고. 그것을 깨우치고 나니까 외로움이 별 것 아니더라고.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타짜였던 아저씨가 강에 작은 배를 띄우면서 그런 말을 하니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어차피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 것이 인생이니까 고독이든 외로움이든 훌훌 털어버려라, 강요할 생각은 없다. -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자 씨가 '고독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 (마자 씨의 구별법 대로라면) '고독'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고독에 처해지더라도 그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보자는 것이다. 탤런트 최 씨처럼 산중 은거를 하는 것도,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놓지 않는 것도 자기선택이다. 자신이 불편하지 않다면 굳이 휴대전화를 끄고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고독이 필요한 때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면 될 것이다. 어느 광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인 문구가 있어 메모를 해두었다. "우리는 자신과 얼마나 대화를 나눕니까? 우리는 언제나 자신과 싸워 이기려고만 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마자 씨는 아마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자 씨는 자신과의 대화를 조금 더 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물론 마자 씨가 책에서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