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도시에 산다 ㅣ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평점 :
나는 도시에 살고 싶었다. 그곳, 산 너머 동쪽에는 사람들이 밤에도 대낮처럼 사는 것이 부러웠다.북면, 너무 삭막한 이름의 촌동네에서 나는 밤마다 찬물로 땀을 씻겨 내며, 내 뒤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에게, 개에게 돌을 던지며 살아왔다. 그들은 말한다. 짖는다. 내가 니 좋아서 그렇게 따라다녔나, 그런 줄 아나. 나는 그런 생각도 안 했는데, 개는 이미 죽었다. 내 눈물을 받아 먹고 죽어, 누군가의 입에 하루치의 양식이 되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가 바랐든지 아니든 그건 상관이 없다. 그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내 목은 죽어가는 그것들과는 무관했다는 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
부산은 박경리 선생님의 <파시>에 당시 50년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묘사되어, 지금 부산에 대한 이미지 역시 똥장군 지나간 뒤의 그 느낌과 비슷하다. 부산 살라 하시면, 나는 못한다. 그런 말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전흔이 남아 있는 그 땅을 <나는 도시에 산다>는 너무 아름답지 않게 표현하려 한 흔적을 보이지만, 너무나도 아름답다. 빽삑이 들어찬 달동네의 모습도 흑백사진 속에서는 덧없이 아름답고, 봄날이다. 나는 그렇게 사진을 감상했구나. 나와 무관한 모든 것, 아니 나와 상관있는 모든 것에 '나'가 없으면 너무나도 아름답게 받아들여 마치 내것인 양 꾸민다. 나는 이것을 퇴폐적 낭만주의라 부른다. 지각되는 현실세계는 늘 왜곡이다. 그렇지만 '나'의 지각은 때로는 환상적이지만 완충지를 만들어준다. <나는 도시에 산다>에서 나는 폭신한 충격완화제를 느낄 수 있다. 우선 사진에서는 그렇게 나는 다시 감상적인 이상을 만끽했다.
글을 다르다. 팍팍하다. 빠다코코넛을 한 웅큼 쥐어 입에 밀어넣는 짓을 한 듯, 글은 다르다. 벚꽃, 목련을 이야기하지만 글은 부산의 정경 그대로, 해운대에서도 목이 말라 애타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 내가 느낀 것은 그러했다.
이 책은 사진은 참으로 감미롭지만, 글은 지극히 현실에 가깝다. 그 현실이 지식인의 그것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적잖이 당혹스럽다.
나는 도시에 산다. 그러나 부산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도 부산과 같은 역사,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이들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 흔적을 애써 없이하려 하는 공간에, 그 시간에 내가 앉아 있다. 나는 도시에 산다. 여기는 부산이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50년대에 살고 있다. 언제 나는 자유로룰까 기대를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