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투라 CULTURA 2009.봄 - 제13호
작가 편집부 엮음 / 작가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봄볕에 책을 펼쳤다. 처음 쿨투라 읽었던 때가 먼저 책과 함께 펼쳐졌다. 우편함에 엉덩이를 내밀고 꽂혀 있는 책, 책을 들고 나와서 버스에서 흔들리며 읽었던 쿨투라가 벌써 통권 13호란다. 기억은 왜곡되기 십상이라지만 그 감정은 참으로 따습고 보드랍다. 무턱대고 가운데를 폈는데 좋은 시 한 편이 둥실 떠오른다. 어질증이 일었다가 아하, 탄성이 뒤늦게 튀어나온다. 읽기는 늘 마지막 문장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단점이 참 좋다.

 

 

 

 


 

탈중심주의

 

강희안

 

 

   캠브릿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과 미자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겄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너는 전후에 존재한다. 고로 나는 가운데토막이다.

 

 

 

 처음 글, 그러니까 강희안 씨의 시를 읽고는 '이거 나도 아는데,'하며 반가워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시는 모르고 있었다. 안다는 익숙함과 모른다는 낯설음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을 읽는 순간 카타르시스와 함께 이마를 탁 치는 통찰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한 경험이라야 거기서 거기겠고 철저히 일상에 붙박인 사적인 체험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에 전부이고 중요한 일부분이다. 내가 느낀 그것은 지독한 아우성이었다. 너는 전후에 존재하고, 나는 알맹이라는 말은 어떠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유용하게 써먹을 데가 없을까,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나는 EQ, IQ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GQ는 월등히 높은 편이다. 잔머리 지수.

 

  시부터 먼저 탐독하고, 산문을 하나씩 읽어나간다. 쿨투라는 특성인지 산문도 읽기에 어렵지 않고 막힘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특히 '세태에 대한 비평의 본령'을 제외하면 ^ ^ 나머지는 거의 우리 일상, 미디어적인 일상과 근접한 내용이기 때문에 친숙하고 반갑다. 좀더 유식해졌나 싶은 포만감까지 느껴진다. 혼자 짐짓 우쭐해하다가 봄호에 실린 시들을 찬찬히 다시 살펴본다. 좋다. 문태준 시인의 '일가'는 이미 읽었던 작품이지만 다시 봐도 참 좋다. 어째 이래 가슴이 저미는지, 시는 이런 맛이 있어야 일품이라고 할까. 무심히 또 뇌어본다.

 

  쿨투라는 가벼운 산책길과 같은 느낌이다. 물론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고,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실어서 편향되지 않도록 구성에 힘쓰고 있다. 문화예술 기행은 언제나 보아도 일관성 있는 맥락을 상비하고 있다. 새롭게 펴낸 시집에 대한 이야기도 깊지 않고, 그렇다고 가벼워 들뜨지 않는다. 일반 독자인 나에게 '쿨투라'만한 계간지가 또 있을까 싶다. 문제는 아직도 '쿨투라'를 나는 '쿨트라'라고 불러대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나는 '쿨트라'를 배워 익혔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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