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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앗 - AJ공동기획신서 2
김서영 지음, 아줌마닷컴 / 지상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그리고 <시앗 2>
두 권으로 엮인 '시앗'
읽으면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장면 묘사, 그리고 심리묘사에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실화였다는 사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가치유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얼마나 화를 분출하고 또 정서적인 안정을 꾀했는지 의문이다. 아직도 내 속에는 분노가 끓고 있고, 시시때때로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물론 상대방은 멀뚱 눈만 끔뻑이면서
'쟈가 와 저라노?'(저놈이 왜 저래. 미쳤나)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화를 무색하게 만들기 일쑤다. 오늘도 나는 화를 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의뢰인과 그리고 또 많은 사람에게 나는 화를 냈다. 그리고 수습하지 못해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지금도 한참을 서 있다. 뭐 마려운 뭐처럼 나는 늘 어설프다.
1.
"첩이 첩을 못 본다."
하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시앗>을 읽으며 나는 먼저 그 말을 떠올렸다. 사람 마음이야 다 같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라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시앗>을 읽으면 그와 그녀가 수시로 뒤죽박죽인 것이 먼저 눈에 띈다. 그와 그녀로 대표성을 획득한 느낌이 든다. '그'는 모든 남성일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모든 남자일 수는 있지만 모든 남자가 그일 수는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이다. 남녀로 구분해 받아들여서는 안 될 일이다. <시앗>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2.
여성학 석사를 수료한 한 분이 하던 소리가 기억난다. 여자에 적대감을 갖게 되는 값진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수긍하는 사람이 남자뿐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았던 대부분의 여자분들 역시 동의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구나, 경계는 다시 경계를 만들고 갈등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시앗>은 여성주의, 무슨 리즘에 입각한 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의 결혼생활에서 여자들이 겪어야 하는 일정 부분은 옳다 싶다. 특히 그와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에서 한 남자를 두 여자가 공유해야 하는 현실에서 느끼는 것은 여성 남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책에서 한 사람의 사람을 보았고, 만났고, 때때로 현실성 있는 글의 전개에 지루한 일상에 무뎌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려니 그가 그녀에게로 가는구나, 여행을 다녀오는구나.. 어느 새 나는 서술자의 발화점에 동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글쓴이의 다양한 시점 변화에 현실을 객관화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도 부러웠다.
4.
무슨 이야기를, 나는, 지금 풀어낼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쓰면 무수히 많은 쉼표를 찍어대며 머뭇거리는 지금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쓴 글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체취를 맡는다. 그것이 쉼표였다. 머뭇머뭇 찍어댄 쉼표에는 악취가 난다. 가끔은 바람 좋은 날처럼 상큼한 냄새도 나기도 한다. <시앗>을 읽고, 그 흔적을 남기는 지금, 지금의 나는, 쉼표를 찍어대는 나를 본다. 나의 냄새를 맡는다.
5.
영원의 반려자는 없는 것일까.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상처받고, 그 상처를 치료해주어야 한다. <시앗>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부부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살피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