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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변해야 아이가 산다 - 자녀교육 전문가 40인과 함께하는 좋은 부모 워크숍
마샬 듀크.사라 듀크 엮음, 모난돌 옮김 / 뜨란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그 동안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권위적인 이름 아래 수많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셈이다. 부모없이 자랐거나 또는 과잉 억압, 가족 해체, 교육 기회상실, 관심 부족, 기계적인 수업, 제때 치료 받지 못한 학습 장애 등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을 아동기 질환으로 치부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잘못된 진단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책임이 있는 기관들을 개선해야 하는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했다. 그 대신 모든 잘못의 원인을 아이들에게 떠넘겨왔다.
(109쪽)
나는 이 발문에 동의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전문가의 권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한 일들을 앞으로도 자주 목격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는 세상은 비관적이고, 암울하다. 그러한 일들을 막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 가능성의 시간이 창창하기 때문에 세상은 긍정적이고 밝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가 산다>는 불편과 불안을 기저에 깔고 있다.
씌어진 글들은 관련 현장에서 활동중인 다양한 전문가들이 썼다. 부모의 노력에 아이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이 책제목, 참으로 강렬한 일침이다. 아동관련 분야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많은전문가들이 쓴 다양한 글들에는 일면 겹치고 중첩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가벼이, 귓등으로 듣고 넘길 일이 아니다. 한 아이의 목숨이 걸려 있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지침이다.
아이들은 자기 집안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집안이라고 느껴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족에 대한 고유하고 특별한 자부심을 심어주자. 배타적인 우월 의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지역과 다른 문화와의 연대감 속에서 독자성을 간직하게 하라는 것이다.
(90쪽)
이 책에서는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 '아이'에 대한 책을 나는 '루소의 에밀'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인상 깊었지만 내게는 굉장히 지루했던 책이었다. <에밀> 이전의 세상, 즉 기독교의 성악설로 보는 세상은 온통 죄악뿐이었다. 아이는 죄를 지은 존재요, 그러니 어른들의 축소판 이외의 것이 아닌 하나의 노동력이었다. 노동력의 관점에서 아동은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 다를까. 여느 중산층 이상의 가정의 아동만이 아이라 한다면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아이는 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중산층 이상, 경제력이 있는 집안만이 사람이라 하면 분명 세상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도 '사람대접'을 받고 사는지는 의문이다. 성적의 족쇄, 벗어나려 돌아누울수록 더 죄어드는 족쇄에 걸려 아이들은 살아가고 있다. 신체, 정서, 방임, 성학대 등 수위만 다를 뿐 아이는 어른에게 '적대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속한 가정, 우월의식, 선민의식이 아니라 "독자성"으로 당당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그러한 독자성의 당당함을 누리지 못했으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학대는 세대간 전승되게 마련이다. "나는 결코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가정을 경험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아이에게 탁월한 양육을 하고자 한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은 책, 좋은 책을 읽더라도 아이에게 직방(직효약)은 없다. 아이가 어른의 축소판일 수 없듯이 아이는 책 그대로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희망이다. 그것이 우리의 전부이다.
정직하고 공평하세요. 우리는 모순을 금방 알아차려요. 우리는 엉터리를 믿지 않아요.
우리가 자란 뒤에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듣지 않는 것처럼 비칠지 몰라도 우리는 다 듣고 있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가고 있어요.
약속을 지켜주세요. 우리는 정말 엄마아빠를 믿고 싶어요. 따뜻한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어요.
"너는 정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란다."라고 말해주세요.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