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많은 금기> 이후로 읽는, 호시 신이치의 작품 <흉몽>이다. 짤막하고 강렬한 느낌을 <수많은 금기>에서 받았다면 <흉몽>은 짧은 이야기가 전체를 꿰차고 있다는 느낌, 때때로 비슷한 배경, 구성 등을 만나면서 이 책은 단편이라기보다는 장편을 퍼즐처럼 늘어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곧잘 하게 된다. 어쨌거나 전체적인 느낌은 <수많은 금기>가 더 나았다. 기대 않고 읽어 그런 것일지, 아니면 <흉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2.
호시 신이치의 작품은 짧다. 강렬하다. 신선하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반전이 있다. 모든 반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둔함에 때때로 아쉽고, 때때로 황당하기도 했다. 주인물과 반동인물의 특정한 구분이 없다. 즉 서술의 중심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일본 조직(혹은 정부)의 국가관, 혹은 작가의 사상을 얼핏 볼 수 있다. 그리고 글쓴이 개인적인 기호- 술, 경제관, 성 유희 등을 얼핏 볼 수 있다. 스치듯 지나는 것이라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호시 신이치를 만난 것은 어쩌면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읽은 책이 호시 신이치가 쓴 책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 처음 순서를 잡은 작품이 '웨스턴 게임'이라는 것, 마지막 작품은 '눈을 뜨면'이라는 것. 17쪽, 96쪽, 128쪽, 157쪽, 168쪽, 172쪽, 182쪽, 200쪽은 다시 읽어볼 심산으로 모퉁이를 접어놓았다는 것, 그리고 누워 읽기를 즐겨 책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늦여름 참으로 더워 고생했다는 것이 <흉몽>을 읽었다는 증거이다. 내가 믿는 것, 그것이 사실은 증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3.
<흉몽>
제목이 참 좋다. 나는 이 제목을 참 좋아한다. 만약에 내가 어휘를 정확하게, 민감하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제목에 썩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가위눌림과 흉몽는 같다는 등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아마도 얼렁뚱땅 뚝때거리에서 비롯된 것이겠다. 즉 나는 가위눌린 뒤에 흉몽이라는 책에 꽂혔다. 여태 한 번도 가위눌린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다.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자각하지 못했거나 아직 겪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흉몽>을 처음 찾을 때, 가위눌림을 기대하고 읽은 셈이다. 한데 <흉몽>을 덮을 때 나는 여러 가지 꿈을 엿본 느낌이다. 기괴한 소설을 읽고자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수많은 금기>, 호시 신이치 작품을 읽었다. 하니 호시 신이치의 작품이 가볍게 읽고 상징과 반전 뒤에 숨겨진 신랄한 비판 의식까지 생각해 볼 기회가 있다는 것, 그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한데 아쉽게도 <흉몽>을 읽는 동안은 속시원타거나 명쾌하다, 뜻밖의 이야기다는 감탄은 전혀 없었다.
4.
누군가에게는 이런 꿈도 있겠구나, 내게도 언젠가 이런 꿈을 꾸겠구나. 흉칙한 X를 꿈꾼다. 위스키 한 잔과 금화와 사기. 국가적 횡포....
"말도 안 되오. 부당한 체포요."
"의사 가운데 '병증 명명(命名) 애호증'의 경향이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발표하면 여론도 잠잠할 겁니다. 오히려 잘한 일이라 하겠지요. 자, 갑시다."
"심하군. 당신들은 '권력 발동 애호' 성격이댜."
"이봐, 또 이름을 짓는군. 뭐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소. 우리는 상부의 명령에 따를 뿐이오."
(병명/ 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