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나의 고전 책꽂이 2
김진섭 지음, 양상용 그림 / 깊은책속옹달샘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가족의 문제가 한 가정 내의 것으로만 볼 때 비난하기 일쑤다.  왜 그렇게 사냐, 부모 잘못 만나 아이들 고생이다 등등으로 혀차는 소리가 수없이 쏟아진다. 과연 가족 구성원들 개개인만의 문제일까.  보는 시각에 따라 무수한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초고가 나온 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홍길동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비단 국문 사용 때문만을 아니다.  <홍길동전>의 우수한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가족 문제가 곧 사회, 국가 전체의 이야기로 끌어가고 있는 '힘'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홍길동전>을 다시 읽었다.  갑갑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국어 수업 시간이 아니라  읽어야 할 것 같은 때가 비로소 맞아들어 읽었다. 김진섭 님의 <홍길동전>은 글말보다 그림체에 더 매료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동화책에서 그림체는 갑직하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다. <홍길동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상용님의 그림체는 신비롭다.  무식한에게도 이 그림체는 아마 조선조 문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의 문화가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막연히 믿어 의심치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한데 과연 문화라는 것이 집단성이 있는가, 자문할 경우에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문화 역시 '힘'의 논리를 따르게 마련이라는 비관, 염세주의가 야비하게 고개를 쳐든다. 잊혀지, 잊어야만 했던 우리 문화, 왕조시대의 풍습을 엿보는 듯한 그림체에서 원색적인 한민족의 문화를 다시금 각성하게 된다. 자연에 가까운 눈부신 원색은 때때로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즉 비손, 염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의 문화는 긍정성이 기저에 깔려 있다.

 

     <홍길동전>의 서사는 이미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밑줄 쫘악 그으며 지겹도록 들어왔던 내용이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읽었던, 토막난 홍길동전과는 달리 지금 읽는 이 책은 매력적이다.  아주 단순한 어휘까지 풀어 설명하는 데에서 낯설어 당황할까 걱정하는 제작자의 배려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홍길동전이 씌어졌던 당시대의 사회, 정치 판도까지 언급하면서, 홍길동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설명까지 자세히 해둠으로써 책 읽기를 더욱 풍성하게 도와주고 있다.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율도국, 길동은 노래한다.

 

칼을 잡고 시름을 비껴서니

남쪽 큰바다가 몇 만 리뇨

대붕이 날아다니고

회오리바람이 이는도다

춤추는 소매 바람을 따라 나부끼니,

티끌을 쓸어 버리고 태평한 세상을 만들었구나!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고 상서로운 별이 비치는도다.

용맹한 장군이 사방을 지키었으니

도적이 이 땅을 엿볼 리 없도다

(139쪽)

 

     사람 사는 세상, 관계 속에서 모든 갈등이 비롯되게 마련이다. 이상향 율도국이 지금의 어디 지역이라는 것에는 사실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큰 시름에 애태웠던 그 당시의 고뇌가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때 <홍길동전>이 많이 읽혀야 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에서의 대화를 포함한 모든 양육 방식이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한다. 어마어마한 족쇄다. 홍길동은 그 틀을 깨기 위해서, 자기 정화를 위해서 그토록 비현실적인 행동을 보이며 스스로 치유되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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