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면? 없다면!>은 삽화 때문에 읽은 책이다. 그림만 봐도 뉘신지 알 만한, 적어도 내게는 그림만으로도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 분이 바로 '정훈이'님이다. 한겨레 신문 웹사이트에서 우연찮게 만화를 보고 지지자?가 되었다. 아마 정훈이'님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고 모를 사람은 모를 것이다.
1. 그림, 거부감이 덜한 소통의 터널
'정훈이'님의 만화에는 세상을 우습게 볼 줄 아는 여유가 있다. 내게 농담을 가르쳐 준 사람 중 한 분이 바로 '정훈이'님이다. 비록 나는 한 마디 뱉으면 혼자 키득대지만 '정훈이'님은 나를 웃긴다. 겨드랑이 간질 듯이 자지러질 듯 웃길 때도 있고, 때로는 이해를 못하는 내가 이상해서 웃어댈 때도 있다.
글은 그림보다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용한다. 하니 심리치료에서 그림이 즐겨 사용될 것이다. '정훈이'님의 만화는 사람을 웃게 하는 힘이 있다. 머리 굵어지고 세상이 문문하게 뵈던 10대 후반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그 당시 내가 '정훈이'님의 만화를 봤더라면 아마도 공감하지 못했을 그림체이다. 진지함이 세상을 멋들어지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으로 아침에 눈을 떴고, 새벽에 눈을 감았던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나도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 없이 무턱대고 색연필로 그려대는 나도 모를 그림에서 나는 내 생각을 얼핏 읽어낸다. 내 속에 가득한 분노와 폭력성을 똘똘 감싸고 있는 위선이 삼삼하게 보인다. '정훈이'님의 그림에는 '내가' 없기 때문에 더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2. 책, 알찬 구성
<있다면? 없다면?>은 한마디로 '우습다'. 가소롭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기막힌 상상력을 정련된 문장으로, 단락이 바뀔 때마다 주제문에 어울릴 사진까지 실어놓은 구성인데 어째 가볍다, 유치하다 하시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 책, 진짜 우습다.
개에게 불통을 달아주는 이야기에서 잠시 읽다가 덮어두고는, 도심 곳곳에서 보이는 애완견들이 '불개'로 보이는 것은 웬일인고. 유심히 개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가 눈에 선연하다는 것. 책은 마치 없는 것을 실제 있는 듯, 그런 개가 하늘 아래 어딘가에 분명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는 문장들.
책 속에 빠져들어 바닥 모르게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고 숨을 몰아쉬면서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거다. 책이다.' 하면서도 마치 실제 그러한 듯 착각을 해대는 것이다. 읽는 동안 몇 번이고 '대단하다'를 연발하게 되는 책이다. 때때로 전문용어가 액면 그대로 노출되면서 아이들 읽기에 어렵지 않을까, 의아해했지만 사실 내가 읽게만 어려운 것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정규교과에서 언급되는 내용을, 어휘를, 개념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이 책은 정말로 지극히 교육적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더 배우라고 강요하는 어르신들은 얼마나 알고 계신지 사뭇 궁금타.
3. 과학
기억하기로 초등학교 때 '과학'은 참 재미난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실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식물을 키운 적도 있었고, 화산폭발을 실험하면서 여선생님 머리카락 타는 것도 구경했고, 자기장으로 나침반 만드는 것도 해봤고, 좀 많이 어려웠지만 해와 달의 일상(자전과 공전)에 대해서도 '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있다면 없다면>은 그러한 '과학'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나가고 있다. 과학 싫다 해도 분명 이 책은 좋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