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은 여럿을 한데 모은 것이겠고, 잡인은 달리 말하면 쓰레기라는 뜻일 게다. 누가 쓰레기라 불렀나, 그것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 생각도 잠시, <잡인열전> 그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금세 빠져들고 만다. 통속적이라 할까, 물론 통속도 있고 기담도 있고 구구절절 애달픈 이야기도 <잡인열전>에 서려도 있다. 귀기 어리다. <잡인열전>은 그들을 쓰레기라 부른 인간이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는 것이 우선이고, 그들의 삶에서 귀기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그 다음일 것이다.
<잡인열전> 그 첫이야기는 '협객'이다. 이수광 씨는 조선사에 대해서 해박하다. 먼젓번에 읽었던 책뿐 아니라 이수광 씨 저서는 조선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잡인열전>도 같은 맥락이다. 협객 장복선에서 여검객 검녀로 끝나는 <잡인열전>은 단순히 재미로만 읽히기에는 얼개가 튼실하다. 무엇을 전달하고자 이수광 씨는 그들을 잡인으로 부르면 애환을 담아내야 했을까.
잡인들에 대한 관심은 민초에 대한 관심이다. 교조적인 성리학의 시대를 넘어 18세기로 들어서면서 이용후생학이 발전하고 여항문학이 꽃피운 것은 이러한 민초들의 끊임없는 자각에 의해서다.
잡인은 잡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조선시대 뒷골목이나 저잣거리에서 파격적이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머리말,에서)
'민초'에 대한 관심으로 이수광 씨는 잡인을 표명하고 있다. 잡인은 잡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잡인의 한자표기와 잡스럽다의 '잡'은 같은 한자다. 우리가 아니라 주장한다고 해서 그들이 잡인이 아닐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전히 야사보다는 정사를, 야인보다는 위정자를 경외하는 세태이다. 나는 잡인을 시대에 적응한 천재라 부르는 것이 어떨까, 처음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했다. 한데 아니다. 그들은 위대한 천재가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옮아갔다. 그들은 결국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각설이타령을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순하게 양반들이나 부호들을 풍자하기 위해 타령을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가사의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해학적이고 시적이다. (...) 양반이나 고관대작의 자제가 아니라고 해서 시경이나 논어맹자를 읽지 말란 법은 없으나 상당히 풍자적이다. 그러나 이 타령을 부르는 사람들의 삶에는 신산함이 있고, 곡조는 신명 높아서 다분히 혁명적이다. (196~ 197쪽)
예끼, 거 잡놈일세. 라는 소리는 사극 보면 양반님네들이 쓰시던 말씀이다. 물론 양인들도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양반도 큰 범주에는 양인에 속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결국 <잡인열전>에서 잡인이라 불리는 분들은 존귀하신 양반님네들이 하사한 별칭인 셈이다. 요즘도 영감님, 대감님께서 큰소리 떵떵치면서 없는 수염 대신 자신의 턱살을 쓰다듬고는 "잡것들"이라 혀를 찬다. 기가 차는 세상사 푸념조로 한 마디 한 발언에도 역도로 내몰리는 세상은 비단 조선조에만 해당하는 고리타분한, 옛적 이야기라고만 치부할까. <잡인열전>에서 귀기를 느끼는 것은, 그 본질적인 이유는 결국 지금이 그 당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너무 염세적인가. 각설이타령이나 신명나게 불러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