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 신화 속에 감추어진 기이한 사랑의 이야기들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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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대부분 일상은 평지에서 이루어진다. 높이에의 갈망, 그것은 평지와는 달리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 우선은 생각한다. 앉은자리가 바닥일 때와 의자에서 자신의 공간을 볼 때 느낌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우선은, 우선은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이하 <신화의 숲>)을 읽으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척이나 어렵게 여겼던 나인지라, 읽을수록 친근해지는 느낌. <신화의 숲>은 낯선, 그러나 익히 들어온 서양의 신화와 친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 그러나 최복현 씨의 글쓰기 역시 무난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화의 이야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고, 더 나아가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창밖에는 비, 내 마음에는 침묵이다. 이런 시간에 신화의 숲을 거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숙연해진다. 신화 속 신들은, 특히 그리스신화의 그들은 사람과 다르지 않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중학교 때 무턱으로 읽어라 해서 읽었던 지루한 신화가 아니라 이제는 그들 신들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강요는 불만과 회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자의로 읽는 책과 어린 중학생이 읽던 책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신은 곧 사람이다. 사람은 또한 신이기도 하다. 동화 속 인물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혹은 사물이든 상징성을 갖게 마련이다. 너무 편협적인 시각이 아니라면 동화 속의 풍부한 상징성으로 인물들을 살피는 것 또한 이해를 높이고, 시야를 넓히는 한 방편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동화와 신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래도 내가 그 두 갈래의 작품들을 '상징성'으로 받아들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내용'이라 미루어 짐작하며 책을 읽기 때문일 것이다. 좀더 넓은 시야, 그것을 위해서 사람들은 등산을 한다지만, 책을 읽으며 욕심내는 넓은 시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채로운 글읽기 이외에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야겠다.

 

    <신화의 숲>에는 '사랑'을 큰 기준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엮었다. 그 이야기는 당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람같은 신, 신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독서는 이기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책읽기의 기저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의 숲>에서는 재구성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나 미처 깊이를 갖지 못한 여러 이야기를 다시금 만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신화, 특히 신들의 이름뿐 아니라 글쓴이의 이름도 돌아서면 잊고 마는 불성실이 나인지라,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자주, 많은 책을 통해 만나야 할 것 같다. <신화의 숲>을 읽으며 나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형성되었을 '나'를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도 '신화' 관련 책은 비록 내가 모든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찾아 읽을 것이다. 삶은 숫자로도 정의될 수 없고, 더욱이 지금 이 순간으로 규정하고 마는 것은 너무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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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사랑을 주제로 삼아 관련된 신화들을 재구성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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