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치료'를 목요일 밤마다 듣는다. 무료다. ^ ^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에 마냥 재미를 느낀다. 물론 1번밖에 듣지 못했고 15주 강좌로 여름 더운 날 열대야가 극성을 부릴 그 언젠가 1학기 야간 수업은 끝이 날 것이다. 좋은 반향을 일으킨다면 2학기 강좌 개설까지 생각해 볼 것이라는 도서관 관계자의 말에는 관계없이 그냥 즐겁게 듣고 있다.
독서치료에서 독서는 그냥 매개체일뿐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도록, 부담없이 표출하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굳이 완독을 강요할 필요도 없고, 구태여 단편 소설일 필요도 없다. 시 한 편을 읽더라도 전체를 다룰 필요 역시 없는 셈이다. 아이가 집중하는 단어, 문장 하나에서도 충분이 이야기를 하고, 심정을 토로하고, 도움이 될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논다'는 것이다. 함께 놀면서 응어리진,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세상의 관계이다.
<요리하고 조리하며 배우는 과학>(이하 <요리 과학>)은 그와 상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굳이 음식을 다 만들 필요는 없다. 우선은 시장 보는 법. 아이와 손 잡고 시장에 함께 가는 것부터 해보자. 그리고 시장통에 좌판을 펼치고 쪼그려 앉아서
"이봐 새댁 하나 사가라. 무심타, 무심타 어째 그래 모질꼬. 하나도 안 사가나."
악담을 놓는 할머니들의 구성진 음성도 아이와 함께 즐기자. <요리 과학>은 아이를 위한 책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읽어내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다소 버거운 내용이라는 것, 이 내용들은 어른인 내가 익혀 체득하기에는 굉장히 버겁다. 그러니 엄마가 함께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표제에는 '부엌에서 아인슈타인을 키운다'는 거창한 문구를 내걸고 있지만, 아니 우리는 인성을 기르도록 아이에게 배려하는 시간이,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요리는 분명 부담스럽기도 하고 때론 귀찮기도 한 일상의 한 부분이지요. (...) 과정에서 배우는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지요. (...) 교육의 장이 될 수도 (...) 요리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과 함께 요리하는 걸 겁내는 엄마가 있을 뿐이죠. 커가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하루가 다르죠. 오늘의 모습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 이 책에서는 요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과학의 원리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 아이와 함께 과학 요리를 할 때, 부모님은 어디까지나 보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활동의 주체는 아이가 되고 .... (머리말, 에서 )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가 소개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 해서 이 책이 저급한 내용, 단순한 요리법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오다. 착오에 그치지 않고 <요리 과학>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정보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넘겨보는 요리과정에 얼마나 많은 화학반응이 깃들이고 있는지, <요리과학>을 통해 좋은 학습 시간을 누렸다. 가능하다면 독서치료, 독서지도뿐 아니라 요리치료도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나는 또 엉뚱한 생각을 한다. 요리를 하면서 체득하게 되는 건강한 행동들, 아이에게 얼마나 유익할지 생각해본다면 <요리 과학>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