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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다 읽고서야 이 책 제목이 <술취한 코끼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인즉슨 <술취한 코끼리>로 책을 읽었다는 ㅡ,.ㅡ 그렇다고 해서 엽기 기발한? 아잔 차 스님을 만나지 않은 것도 아니요, 브라흐마 스님의 강연을 곁귀로 들은 것도 절대, 절대 아니다. 류시화 시인의 옮김으로 우리글말로 다시 태어난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아잔 차, 브라흐마 스님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한 번 나자빠졌다가 오똑 앉아서 생각하면, 과연 옳다구나 남발하게 된다. 무엇이 이토록 감동을 주는 것일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 좋은 책을 만났다. 종이곽 속에 든 엽서와 책갈피, 그 분에 넘치는 구성뿐 아니라 책은 훨씬 기대 이상이었다.
교회 건축물은 현대 도심지 곳곳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근 백년 이상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불교만큼의 포용력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이다. 수많은 이단을 자체 생산해내는 기독교의 특성 왈가왈부할 것은 사실 아니다. 불교도 근원을 찾아 캐내기 시작하면 뿌리가 복잡하고 폐해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여느 기독교 서적과는 달리 거부감이 없다는 것, 솔직한 나의 주관이다. 한때 다녔던 교회 목사님께 불교서적을 선물로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회개기도를 명했고, 나는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기독교 건축물, 그 속에 들어있는 생명체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빌어 말하자면 문제는 내게 있었던 셈이다. 누가 내게 종교는 헌신적이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타심이 가득한 모임이라고 한 적이 없다. 그와 유사한 말을 하기는 했지만 콕 꼬집어 그렇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나 역시 종교라면 이러저러하지 않습니까, 묻지 않았다. 믿습니까로 만사형통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내가 믿었던 모든 종교?들의 핵심이었고 불문율이었다.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만이 아실 뿐이다. 앞으로 예전 종교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종교는 배타적이면 안 된다고. 내가 무릎꿇고 회개할 때 그만큼의 공간을 내어줍시사하고, 그래서 배타적인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 구원은 받고 싶은가 보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불교색채가 있지만 불교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표지와 내용, 브라흐마 스님의 법문은 모두 불교적이다. 아니 불교에 속한다. 그러나 누가 읽어도 공감하고 수긍할 내용들이다. 왜? 그것은 우리 삶 전체를 꿰지르는 보편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흐마 스님의 말씀도 참 좋았다. 이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대부분은 브라흐마 스님이 화자로 나오며 조금씩 아잔 차 스님의 일화가 언급되는데, 일화마다 예사롭지 않은 강단?을 느끼게 된다. 좋고 귀감될 만한 글이 참으로 많은 책이라, 그 중에서 옮겨담을 내용 추리는 것 역시 만만찮다. 아잔 차 스님이 처음으로 딱 한 사람에게만 미래, 즉 점을 봐 준 것이 있다. 뭐라 하셨나, 그 말씀이 참으로 참이다.
"잘 들으십시오. 당신의 미래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 점괘는 틀린 적이 없습니다."
불교도는 너무 흥분해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윽고 아잔 차가 말했다
"당신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과연 그의 점괘는 틀리지 않았다. (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