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책을 만났다. 특정공간을 주제로 해서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내용,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이하 <가로수길>). 이 책은 교정본 형식을 디자인으로 채택했다. 그래서 표지를 보면 낙서를 많이 해두었고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는 만큼 무성의를 느낄 분도 있으리라. 규형화된 짜임새를 신뢰하는 나 같은 읽는이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구성이다. 그것을 감안했으리라. 그렇다고 인쇄분량이 많다는 것, 그것도 아니다. 적다. 인쇄 크기도 제멋대로다. 탈자를 디자인화하는 심보는, 기발하다. 하지만 누구를 놀리나, 책 읽는 동안 어지러워죽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장까지 다 읽어내는 이유는 현시점 우리나라의 사회의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의 의도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디자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읽을수록 느낄 수 있다. <가로수길>을 읽으면서 개화기 당시의 종로 운종가가 연상되었다. 지금 우리사회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 해결책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분하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가로수길>이 어디인지, 나는 안다. 그곳을 무심히 걸어지나가면서 나는 서울이 이렇게 되어 있구나, 사람을 만나는 대신 길, 건축물, 고궁만을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굴리며 돌아다녔던 때가 벌써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서울은 많이 변했을까? 아니다. 변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다. 사람이 변한다. 부단히 변해가고 있다. <가로수길>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이 책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낯선 사람처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호기심에서 나는 이 책을 마저 읽었다. 그들과 우리, 즉 나의 거리를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이 책 <가로수길>을 읽는 독서법이다. 물론 <가로수길>에서 소개되고, 서술되는 이야기들을 전부 공감할 수 없다. 어떠한 책이든 모두 옳다구나 맞장구친다는 것은 읽는이로서의 '나'를 망각하는 줏대없는 짓이다. 적극적인 독서는 현실 여건상 어렵더라도 이 책과 나와의 거리를 가늠해보는 것, 그리고 읽은 책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더 배울 수 있고, 공감을 하며 감동을 받을 수 있는지, 그래서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심히 살필 수 있다면 책의 내용을 둘째치고 그 책은 기억될 것이다. 좋은 책, 한 번쯤을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추천까지 하게 된다. <가로수길>은 어떠한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한번쯤 읽어도 시간을 헛되이 소비했다는 불명예, 혹은 타박을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한 구역, 그 구역이 지닌 상징성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살필 수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가로수길>은 안내하고 있다. 비록 지나치게 낙관적인 서술로 일관되어 논박의 공간을 개방적으로 터놓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그 사회를 살아야 할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가로수길>은 간략한 단면도를 내밀고 있다. <가로수길>은 개방적이다. 그러나 그 개방성은 국외로 향한다. 우리 땅,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혹자는 보수적이라고 부르고, 도피행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단히 묵살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가로수길>의 진취성을 보면서 우리 문화에도 개방적인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도록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우리 문화를 진일보하자 선동적인 구호가 아닌 가슴을 치는 책이 있을 것이다. <가로수길>은 그러한 책과 아울러 읽으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 문화를 섬세하게 다루는 책을 한 권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언제 운때가 맞으면 가로수길을 찾지 않을까, 기분 좋은 공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