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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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133쪽)

   가재미는 경상도 지방말이다. 가자미, 두 눈이 한 데 쏠려 있는 바닷고기다.  문태준 시집 <가재미>에서는 죽음을 지켜보는, 죽음을 치르는 눈동자가 있다.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 있을까.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인간은 왜소해진다. 무력해진다. 그러나 가재미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만을 무력감으로만 지켜보고 있지 않다. 그는 생각한다. 그들의 죽음을 지독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속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 이생에서 남겨진 이들의 몫일 것이다.

   시집 <가재미>에는 거대한 구멍이 있다. 시적 화자는 그 구멍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나'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나'는 누구일까.

 

그 구멍에 내가 그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나는 땅 아래로 내려가는 땅벌레의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아요
아침밥 먹기 전엔 봉긋 봉긋 작은 흙무덤이었는데
내가 하얀 고봉밥을 한 그릇 먹고 난 사이 작은 흙무덤은 사방으로 풀어헤쳐지고 빈 구멍이어요
나보다 늦잠을 자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무덤을 열고 누군가 나오는 것이었는데
흙을 덮어 밤을 보내고 햇살이 무서리가 꼬들꼬들 마를 참엔 무덤을 열고 또 어디로 가셨나요
나는 그 구멍에 숨어 산다는 이를 보지 못했어요 그 구멍은
땅벌레의 것인가요 나와 그대의 것인가요
무덤 안에 숨어 산다는 이를 보지 못했어요
나는 하루의 무덤을 보아요
나는 어제의 무덤을 오늘의 무덤을 보아요
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
어느덧 감잎 지고 무서리 내려 흙이 꼬들꼬들해지는 이 가을빛 속에 나 홀로 설 적엔
('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 p 58)



   시 '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는 죽음에 대한, 시집 <가재미>를 일목요연 정리를 하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생명을 얻어서 성장하고 소멸해가는 모든 생물들이 시적 화자의 시야에 포착되어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 밥그릇을 놓고서 ‘나’는 거대한 블랙홀을 들여다보듯, 그리고 안타깝게 절망하고 있다. ‘죽음’은 비단 사람만의 노래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비애는 이별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의 비애. 그 어떤 것보다 죽음은 진실이다.

나의 집에는 묵은 오리 한 마리가 있다 암컷이다 알을 많이 낳아 뒤가
청동 주발 같다 항우울제를 먹고 살고 자두가 익는 오늘 황혼에
눈에 늪이 괴어 있었다 눈초리로 늪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구리 털이 뽑히고 살이 갉혔다 그때
오리 곁으로 쥐 한 마리가 기어왔다 땅구멍을 뚫어 오리 곁으로
왔다 번들번들했다 곁말 거는 척 도리반거리다 오리 곁으로
바싹 기어왔다 갱지를 갉는 소리가 났다 조금 후 구멍에서
익사한 몸처럼 부푼 쥐와 새끼 쥐가 기어나왔다 새끼 쥐는
눈망울이 또랑또랑했다 일가였다 나와 오리와 세 마리 쥐가
눈이 마주쳤다 오오 이런!
('오오 이런!', p. 54)



    사람인 '나'는 그러한 모든 생명들과 하나가 된다. 동류의식을 지니고 세상을 바라본다. 시 <가재미>에서 언급된 병실에서의 죽음이 시집 <가재미> 전체를 통해서 확장되어 그 여운은 엄청나게 크게 파문을 일으킨다.

구멍이 구멍을 밀고 가는 걸 보여주는 한 마리 게
내 눈 속의 개펄을 질퍽질퍽하게 건너간다

진흙 수렁을 벗어나도 바깥에 진흙 수렁이 있고
문을 벗어나도 문 바깥에 문이 또 있다

돌집 하나 없이 우리는 문의 안과 밖에서 살아갈 것이다

붉은 집,
축축한 노을이 우리가 머물 마지막 집이 될 것이다
('문 바깥에 또 문이', p. 107)


    많은 문학상을 수여하고 문단에서 기대하며 주목한다는 시인 문태준 님의 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시어와 함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나를 통해서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모든 생명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짊어지고 운반하고 있다고 한다. 시집 <가재미>에서는 타자의 죽음과 타자의 소멸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자아'의 눈동자가 느껴진다.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시집 <가재미>는 읽는 동안은 무심했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가슴이 아프다. 보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 그것이 운명이다. 외면하고 싶지만 인정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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