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만나다
김형민 지음 / 집사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김형민

(집사재, 2007, 총301쪽)

삶을 만나다

 

 




“건강하세요”라는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

 <삶을 만나다>는 짧은 삽화(일화)들이 엮여서 만들어진 산문집이다. 마지막에 수록된 일화의 제목은 “할머니 비빔밥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이다. 이 일화는 제목에서처럼 비빔밥 집 할머니의 이야기다. 비빔밥에 어떠어떠한 것이 들어갔는지 묻는 저자의 질문에,

 

“비빔밥에 정해져 있는 것이 어디 있당가요. 그때그때 젤로 맛있는 거 골라서 넣으면 되는 거제. 본시 비빔밥이란 말이여, 집마다 다르고 철마다 따로인 벱이여.”

 

라고 할머니는 딱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밥그릇마다 참기름을 한 숟갈씩 퍼넣으면서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건강허시오.”

 

이 짧고 진정한 인사를 통해 글쓴이는 삶을 성찰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뭘 하는 것도 꺼림칙한 일이지만, 누구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짓이다…….’

이 마지막편의 일화를 통해서 글쓴이 김형민 씨는 <삶을 만나다>를 엮은 이유를 밝히고 있는 셈이다.

 

‘건강허시오’라는 말은 일면 사람됨을 다하기 위해서 잘 먹고 활동하라는 뜻은 아닐까. 그리고 그 말에 감명 받은 글쓴이의 사고는 일면 자기고백적 성격을 지닌다. 요즘 시대에 흔하디흔한 것이 일화모음집이다. 하지만 <삶을 만나다>는 그들과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쉬이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평상시처럼 11시에 집에 들어와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짤막한 이야기들의 묶음집이구나, 생각하고 더운 날 찬물에 몸을 닦았다. 그러고 잠시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저자의 머리글만 읽고 밝을 날 버스 칸에서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곧 나는 알게 되었다. 쉽게 읽고 덮어둘 책이 아니라는 것을. <삶을 만나다>를 자정을 몇 십분 앞둔 시간에 진지하게 읽기 시작해서 새벽 쓰레기차가 찾아들 때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삶을 만나다>를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삶을 만나다>에서 얻은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쉽게 풀리지 않는 매듭은 생각하면 할수록 내 뜻과는 달리 엉키고 말았다.

 

  <삶을 만나다>는 일면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러나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책 면면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은 김형민 씨의 눈을 거치면서 글로 담겼고, 다시 태어났다. 방송제작자(PD)인 김형민 씨가 만나는 사람들은 각계각층을 총망라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마다 그가 만났을 위인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람을 만나다>에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삶을 추리고 추려서 엮을 것이다. 소시민적인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글쓴이 김형민 씨의 따뜻한 마음이 진정으로 전달되어,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서서히 따스해졌다. 지금 나는 <삶을 만나다>에 수록된 여러 이야기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진정으로 안타깝다.

 

  <삶을 만나다>는 말한다.

 

“건강허시오.”

 

  그리고 그 뒤에 담겨 있는 의미심장한 뜻을 나는 느낀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믿음이다.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식,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사치에 의존해서 생을 이어간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까지 확인해볼 여유가 없고, 때때로 기만을 당한 채 극약을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비빔밥 할머니처럼 그래도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음에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건강허시오.”

 

라는 말 한 마디로 비빕밥 할머니는 장사치가 아니라 진정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당부. 사람으로 도리를 잊지 마시오. 나는 그 말을 <삶을 만나다>의 모든 이야기들에서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만나다>는 내게는 특별한 책이다. 종종 내 자신에게 무뎌질 때 읽어야 할 책으로, 책장 제일 윗머리에 꽂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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