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개념이 과거에서 현재로 안착되는 동안 얼마나 다양한 변모와 진화의 세월을 거치는가. 전략(strategy)라는 프레임으로 인류의 문명사를 훑고 있는 이 책은 그 변모와 진화의 시간들을 농축한, 진한 엑기스 같은 책이다.

 

역사는 어떤 창()을 통해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많이 달라진다. 미술사가가 바라본 역사가 다르고, 음악사가가 바라본 역사는 다른 색깔로 흐른다. 전략을 연구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역사라면? 3,000년이라는 인간의 장대한 역사 흐름 속에서 로렌스 프리드먼 교수는 전략의 기원부터 발전, 변화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전략이라는 조금은 모호할 수 있는 개념을 기반으로 우리가 전략이라고 명명(命名)하기 전부터 사용해왔던 전략의 의미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내용의 큰 줄기가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면서 읽는데 큰 무리가 따르지는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전략'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략은 목적과 방법 및 수단 사이에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객관적인 실체와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수단을 파악하는 것이다'(17p)

 

우리가 원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을 '전략'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덧붙인다.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원래 생각했던 그곳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고. 그래서 전략은 중간 평가를 통해 수시로 재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이 과정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때도 많다. 그래서 수시로 협력과 동맹 관계를 통해 진행되기도 한다. 또한 전략의 영역은 위협이나 압박, 협상과 설득,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영향력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전략은 힘, 즉 권력을 창조하는 기술이라고.(19p)

 

총 2권으로 나온 이 책의 1권은 '전략'이라는 개념을 인간 이전의 침팬지 사회에서부터 볼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전략의 기원부터 18세기 나폴레옹 전쟁, 세계대전 이후 핵 게임을 하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략이 힘, 즉 권력을 창조하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침팬지 사회에서 침팬지들은 어떻게 권력을 쟁취할까? 동물들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힘이 세거나 몸집이 큰 녀석들이 우두머리가 될 것 같지만 우리가 잘 아는 제인 구달,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프란스 드 발이라는 동물행동학자의 연구 결과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혹성탈출> 중에서)

 

침팬지 사회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비단 힘이 센 것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은 것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동맹을 맺느냐, 어떤 지략을 선보이느냐에 따라서 우두머리는 바뀔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영화 <혹성 탈출>에서 우두머리를 맡고 있는 '시저' 역시 그렇다. 시저는 가장 강한 침팬지는 아니었다. 물론 힘이 세긴 했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은 다른 침팬지들에 비해 머리가 좋아다는 점이었다. 그는 리더십이 있었고,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법도 알았으며, 잘못을 하는 다른 침팬지를 혼내고 또 용서할 줄도 알았다.(물론 과학의 힘에 영향을 받았지만 침팬지로서의 본성이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전제에서) 

 

저자는 침팬지 사회에서 보이는 정치적 성향에 대한 내용을 통해 '전략'의 기원이 인간 이전, 동물과 원시사회에서부터 나타났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차례로 성경에서는 전략이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고대 그리스신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설명한다. 저자가 '전략'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표현하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전략을 통해서 원하는 목적(힘을 쟁취하는 것)은 단지 물리적 힘에 의해 좌우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 힘도 큰 역햘을 했다는 것, 그래서 약자도 강자를 이기고 정상에 설 수 있었는데 이때의 전략은 대부분 속임수나 간계 등이었다고 말한다.

 

전략의 기원에 이어 손자와 마키아벨리로 나아간다. 손자의 <손자병법>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소개하면서 손자가 이야기한 지피지기 등의 방법, 마키아벨리가 군주가 권력을 쟁취하고 부하들의 충성심을 유지시키기 위해 힘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19세기 초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단어의 기원은 5세기 아테네였고, 처음의 그 뜻은 '장군의 지식'이나 '장군의 지혜'였다. 전략의 정의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초기에는 지휘관이 자기 영토를 지키고 적을 물리칠 때 사용하는 수단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페르시아 전쟁)

 

전략이라는 용어는 사실 명확한 정의도 없었고, '전술'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구별되지도 않았으나 최고 지휘관과 관련된 어떤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의 언어 생활에 빠르게 파고 들었다. 전쟁에서 보급과 수송, 화력과 요새화에 대한 계산 등 군사적인 목표의 범위를 결정하고, 군사 작전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176p)

 

이는 지도의 발전으로 더 가속화될 수 있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는, 장군들이 지도를 펼치고 일련의 전투 계획을 짜는 것은 지정학의 발달과 지도 제작술의 발전으로 지도가 만들어지고, 계획에 맞춰 군사작전을 펼치지는 것의 유용성, 대규모 부대를 지휘해야 하는 리더십의 필요 등의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전략의 구체적인 실행과 함께 이를 이론화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클라우제비츠! 19세기 당시에는 앙리 조미니가 나폴레옹의 방법론을 가장 잘 해석하는 이론가로 알려졌었지만 현대에는 클라우제비츠가 조미니보다 더 유명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위대한 전쟁 이론가로 평가받는데, 저자는 그의 성숙한 사고 속에 자리 잡은 통찰력을 강조한다.

 

"전쟁은 놀라운 삼위일체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 가운데 첫 번째가 맹목적이고 자연적인 본능의 힘인 원초적인 폭력과

증오와 적개심이다.

두 번째는 창의적인 정신이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는 (관념적인) 공간인 우연성이다.

세 번째는 전쟁을 오로지 논리성(합리성)에 종속하도록 만드는,

정책의 도구로서의 종속성이다."

 

전쟁은 이후에 '섬멸전'이 최고냐, '소모전'이 최고냐 하는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느 방법을 써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시 전략가들에게 가장 큰 화두였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 논쟁의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폴레옹 시대까지는 화력전으로 이어졌지만,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핵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은 다른 양상으로 나아갔다. 핵무기라는 공멸의 무기가 개발되면서 이 무기를 쓰면 승자는 없고 모두 다 패자인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전략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되었다. 이제는 전쟁의 목적이 승자가 아니라 싸움을 억제(이 책의 역자는 '억지'(deterrence)라고 표현했다)하는 것이 되었다. 이 내용을 설명하면서 경영학 수업에서 항상 배우는 게임이론과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 등장한다. 나는 이 부분이 좀 신기했는데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이 대치하는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이론으로 해석을 했다. 대등한 힘을 가진 두 강자가 서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자신의 선택을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출처: http://economicstudents.com/2013/08/nuclear-deterrence-and-profit-maximisation/)

 

두 강대국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이웃 나라들에서도 전쟁은 끊이질 않았다. 전쟁의 새로운 방법들은 계속 고안됐는데 우리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고 있는 영국 장군 로렌스가 펼쳤던 방법이 바로 게릴라전이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베트남의 보응우옌압 장군도 게릴라전으로 나중에 전면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고자 했다.

 

 

이 책은 군사 혁신에 관한 내용으로 1권을 마무리한다. 대량 살상무기는 물론이고 기상천외한 정보작전을 벌일 수 있는 다양한 신무기들이 개발되면서 정보를 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전쟁, 정보화 시대에 맞게 조정된 군사 작전들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전략'이라는 것은 단어 본연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기술이 발전하고 목표에 이를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해지면서 지속적으로 다른 양상을 띄었던 것 같다. 고대에는 싸움의 방법이 속임수나 간계, 지략 등이었다면 중세에는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군사 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그리고 핵무기가 발달된 후에는 그것으로 어떻게 힘의 균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의미를 훨씬 풍부해진다. 성경은 단순히 종교서가 아니라 '신의 전략서'로 읽힐 수 있고, 나폴레옹의 전쟁은 위대한 전략 이론가들의 장이었으며, 게임이론은 비슷한 힘을 가진 두 집단의 치밀한 두뇌싸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가 이전과는 다른 식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방대한 분량과 난이도 덕분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었지만 충분히 공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간만에 머릿속에서 다양한 지혜의 향연이 펼쳐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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