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
이창재 지음 / 북라이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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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커피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런 책이다.

 

불교에는 별 관심도 없고, 스님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고, 딱히 관심 있는 주제도 아니었으나

왜 이 책을 집어들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제목 때문에.

<길 위에서>라는 제목에 눈이 갔다. 인생의 길 위에서, 내가 걸어가는 이 시간의 길 위에서

그냥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추운 날 커피를 호호 불며 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었다. 

 

인디영화관에서 포스터를 봤었고, 그때도 제목에 이끌려 영화를 봤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1년에 단 두 번 문이 열리는 곳, 경북 영천의 작은 사찰 백흥암에 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

 

(▲ 영화 포스터) 

 

 

영화를 보면서도 감독님의 나레이션 목소리가 참으로 좋다고 느꼈었는데 책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감독님이 그 음성 그대로 내게 책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낮은 음성으로 가만가만히.

 

 

"가장 많은 들은 얘기는 이거였어요.

사람 보고 스님 하려고 하지 말라고요.

여기가 부처님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아니잖아요.

부처님이 '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걸 아시니까 절에 대해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을까봐

그게 가장 걱정스러우신가 봐요.

사람 보고 중 노릇 하지 말고, 저만 중 노릇 잘 하려 하라고 하셨어요."

 

- 민재 행자(56~57p)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저자인 감독은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를 찍기 위해 백흥암으로 들어가

갖은 구박(?)을 견뎌내며 300일 동안 그곳에서 촬영을 한다.

절도 다 같은 절은 아닌가 보다. 수학여행 때 가본 절처럼 그냥 아무때고 들어갈 수 있는 절이 있는가하면

일반인들에게 문을 걸어잠근 곳도 있다.

백흥암은 스님들이 수행하기 위한 곳이라 일반인들은 1년에 단 두 번, 초파일과 백중날만 들어갈 수 있다.

아무래도 스님들이 수행을 할 때 관광객들이 오면 부산스러워지니...

문을 걸어잠그고 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백흥암에 있는 스님들의 인터뷰, 저자의 소회,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숨겨진 이야기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것은, '아 스님들도 사람이었구나'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

이 책은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구나.

다만 나와 조금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구나.

라는 것.

 

 

 

 

책 속에는 백흥암에 있는 여러 스님들이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나오는데 나는 선원장인 영운 스님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영화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한 노스님은 밥 한 발우가 피 한 발우라고 그랬어요.

스님들은 밥값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행을 안 하면 안 되죠.

...선방에서 내가 밥값을 안 내도 될 만큼 수행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게을리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이만하면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 마음이 들면 자기를 꾸짖어야 해요.

죽는 날까지 '너 정말 잘 살고 있느냐'라고 자기한테 물어야 해요.

물론 옆길로 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또 얼마든지 마음을 돌려서 원래의 길로 돌아올 수 있어요.

마음자리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니까요.

그렇게 수행의 길 위를 걸어가는 거지요."

 

- 영운 스님(171~172p)  

 

 

스님으로 살 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예순 살이 넘도록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

끝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힘들고 방황할 지라도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부러웠던 것이다. 불안하고 힘들어도 미래를 선택한 사람들이.

 

불교이야기이고, 나완 딴 세상 이야기 같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끌린다.

그런 의도로 씌여진 것 같진 않지만 읽다보면 그냥 조금씩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난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길 위를, 나의 길 위를 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전에 농사일 하면서 수행하시는 분이 그런 말을 했어요.

사회에서 갖는 마음이나 출가했을 때의 마음이나 비슷하다.

여기서(사회) 잘 살면 출가해서도 잘 살 것이고, 여기서 힘들면 거기서도 힘들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그냥,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좋은 일도 생기도 좋은 스님도 만나게 되고 그러더라고요.

좋은 것을 찾아 어디로 갈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일단 내가 즐겁게 살면 좋은 일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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