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스티브 잡스 - 잡스 사후, 애플이 겪은 격동의 10년을 기록한 단 하나의 책
트립 미클 지음, 이진원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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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2년 전이었다. 2022년 이른 봄, 'After Steve'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경제경영서를 만드는 편집자는 대부분 '구글, 애플, 넷플릭스' 등의 단어에 빠르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바로 원고 검토에 들어갔다.


-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에서 실리콘밸리쪽 취재만 전문으로 하는 기자의 필력

- 잡스 이후의 애플은 조명이 좀 덜 됐는데 그 부분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잘 해소해주는 내용

- 조너선 아이브와 팀 쿡을 한 챕터씩 대비해서 보여주는 마치 소설과도 같은 전개

- '비밀유지서약'으로 유명한 애플 직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


그러나

- 51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 번역하면 한국어판은 페이지가 더 많아진다. 번역 기간도 오래 걸리고, 편집 기간도 오래 걸린다. 분량 때문에 독자들의 진입장벽도 높다.

- 시장 사이즈 문제 : 한국 시장에서는 '스티브 잡스'에 관한 내용은 판매가 괜찮지만 그 외 인물에 대한 판매부수는 높지 않은 편이다. 이런 서사적 성격이 짙은 책이 많이 읽히는 미국에서야 이 책에 거의 900개에 달하는 리뷰가 달리고 판매가 나쁘지 않겠지만 한국은 절대 아닐 것이다.

- 내용이 상당히 자세하다 :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아야 하나....싶을 정도로 저자가 글을 엄청 상세하게 적었다. 중심 내용으로 들어가기까지 사전 설명이 많은 편이라 독자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그럼에도 비밀스럽기로 유명한 애플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잡스 사후 애플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가 꽤 있을 거라는 점, 경제경영서의 읽는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층을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 어떤 책은 직접적으로 어떤 기업의 경영 전략이나 회계 원칙을 '답'처럼 독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것> 같은 책은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나름의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게 한다. 책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데, 최초의 독자격인 내가 봤을 때 이 책의 장점은 켜켜이 쌓아 올려진 글자들 속에서 한 회사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분투를 직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투’, 그 단어가 생각이 났다.(분투[奮鬪]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함.) 자기만의 해답을 가지고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제품을 더 잘 만들려고 애를 쓰는-그 이유가 자기 만족이든, 돈이든, 그 모든 게 합쳐진 것이든 간에-긴 드라마였다.

잡스 사후 조너선 아이브와 팀 쿡 모두, 때로 인간이라서 실수를 하고 정직하지 못한 부분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운다. 누구든 최선을 다해 싸우는 모습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 이후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회사의 신화 같은 인물이 사라지고 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그 회사가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 수만 명의 밥줄이 걸려 있다면? 천재 디자이너라 불리는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와 함께 만들고자 했던 애플만의 그 정교한 단순함을 구현하기 위해 집요할 정도로 모든 면에 집착한다.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넌더리 쳐질 것이다. 회사에서 미친 X 소리 듣기 딱 좋은 캐릭터라고 본다. 그는 선, 면, 흠집, 태도 등 자신이 지향하는 단순함에 해가 되는 요소를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원하는 무언가를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사람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운영팀이 필요하다. 워런 버핏이 대단한 경영자라고도 칭한 팀 쿡은 애플의 CEO를 맡아 애플을 잡스 때와는 다른 반열에 올려놓는다. 팬에 따라서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애플의 주주라면, 그리고 경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팀 쿡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 주가는 많이 떨어졌으나, 2023년 7월 팀 쿡이 있었기에 애플은 세계 최초로 3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달성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가는 아니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도(트럼프 정부와 관련된 이야기는 재밌었다!), 관리 측면에서도 좋은 경영가라는 생각을 했다.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매력도는 떨어지지만(멋있기는 잡스가 멋있지) 경영적인 부분을 배우고 싶다면 팀 쿡의 행보를 봐야겠다는(권모술수...) 생각도 들었다.


책의 편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애플에서 비전 프로의 소식을 전했다. 저자인 트립 미클에게 한국어판 서문을 요청하면서 미국 내에서의 비전 프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어판은 미국판보다 2년 늦게 나오는 것이기에 그 사이의 애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저자는 감사하게도 직접(!) 비전 프로를 착용해본 이야기까지 서문에 적어주었다.


애플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그 부분에 대한 답을 해주는 책은 아니다. 투자에 대한 힌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1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했다면, 관리자의 위치에 있다면 이 두꺼운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어떻게 이것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저런 길은 가면 안 되는 거겠구나’ 등과 같은 공감과 상상의 시간을 선물한다.

만드는 내내 너무 길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요즘 이런 류의 경제경영서가 잘 없어서 재밌게 작업했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고, 워런 버핏의 포트폴리오도 살펴보고(현재 애플이 50% 차지) 애플 주가가 떨어진 김에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워낙 두꺼운 책이라 리뷰가 늦게 올라오겠지만 읽으신 분들의 이야기들을 기다려봐야 겠다. 같은 콘텐츠가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읽힌다는 것이 이 산업의 묘한 재미이므로. 아무쪼록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가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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