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희망탐사 42>청주 육거리시장의 고민과 대안

 [프레시안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어릴 적 엄마 치마 끄트머리를 붙잡고 복작복작한 시장을 걸어 다니다보면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시큼한 막걸리 냄새에 살짝 코를 맡기기도 하고 오색 옷들에 눈을 빼앗기기도 했다. 여기저기 시끄러운 소리 틈새로 곧잘 농가가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듣도 보도 못한 가락들이 귀를 울렸다. 날랜 엄마의 발걸음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장을 가는 게 좋았다. 사람냄새, 음식냄새에 가락이 어우러지고, 내 것이 아니어도 풍성한 그곳이 나는 좋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의 시장, 흔히 말하는 재래시장의 옛 영광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요즘 재래시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 두 갈림길에서 모두 발버둥치고 있다. 재래시장 상품권을 발행하고, 재리시장을 현대화하고, 주차장을 들이고, 지자체나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재래시장 이용의 날을 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자로서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살아남기를 계속하고 있다.
  

▲ 재래시장 활성화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청주 육거리시장 입구. ⓒ희망제작소

  청주 육거리시장은 살아남았다. 면적 3만 평, 상가점포수 1500여 개, 종사원수 3500여 명, 일일 매출액 7억 원에 이르는 움직이는 거대기업 육거리시장은 3500여 명의 깨침과 1500여 개 점포의 새 각오와, 약 3만 평의 새단장으로 살아남았다.
  
  문자 속에 갇힌 글귀로서가 아닌 실질적인 제 살 깎기와 변화로 살아남았기에 그들의 변화에는 끝이 없다. 하나의 고개를 넘었을 뿐 앞에는 더 많은 산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안주는 없다. 변화만 있을 뿐이다.
  
  대형마트의 셔틀버스 운영 중단노력과 시장상인들의 각성
  
  민성기 육거리시장 상인연합회장은 그 변화의 맨 앞자리에서 '전진'을 외치고 있다.
  
  "육거리 시장은 청주 최대의 전통 재래시장입니다. 청주 유일의 하천인 무심천변에 우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먹거리와 생필품을 교역하는 장소가 되었죠. 하지만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90년대부터 가속화된 대규모 마트와 쇼핑몰, 홈쇼핑, 인터넷쇼핑 등으로 최고의 상가라는 지위를 양보하고 쇠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다져진 다부진 그의 목소리에는 육거리시장이 봉착한 어려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시장사람들은 강하다.
  
▲ 아케이드 공사를 마치고 좀 더 아늑한 분위기로 바뀐 육거리시장. ⓒ희망제작소

  "다른 시장과 같았죠.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거의 문을 닫을 형편이었어요. 급하게 각 구역의 번영회장들이 모여 연합회를 만들어서 처음에 시작한 운동이 대형마트의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하라는 데모였어요. 버스조합, 재래시장, 슈퍼연합회, 경실련 등이 함께 힘을 보탰습니다.
  
  결과적으로 셔틀버스는 중단됐죠.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깨치기 시작했어요. 상인들 스스로 나서며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벌였습니다. 물론 황무지에서 시작해 실패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실패가 밑거름이 되어 지금은 많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재래시장 살리기는 하나하나 단계를 넘어가면서 진행됐다.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되고서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의 하나로 아케이드 공사가 펼쳤다. 35억 원이 들어갔지만, 생각만큼 고객은 늘지 않았다. 문제는 스스로의 변화였다. 아침 첫 손님이 값만 물어보고 가면 하루 장사가 어렵다며 소금뿌리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아케이드를 설치한다고 손님이 올 리 만무한 것 아닌가.
  
  "상인들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건 시장의 현대화보다 더 중요한 거죠. 그러는 사이 대형마트가 들어왔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년층 이상의 고객들이 시장을 찾게 됐어요. 2000년에는 주차장을 만들었더니 그 해가 우리 시장 활성화의 원년이 되었죠. 물론 주차전쟁을 극복하는데 4년 정도 걸렸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뿐 아니다.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이벤트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행사를 진행했다니 그 준비에 대단한 공이 들어갔을 터이다. 하지만 그 사이 또 다른 대형마트가 화려하게 개장했다.
  
  재래시장의 장사꾼, 친절서비스 교육을 받다.
  
  민성기 회장이 늘어놓는 그들의 노력들을 펼쳐보니 열손가락을 훌쩍 넘는다. 상인연합회를 구성해 한 목소리를 내어 움직였고, 아케이드나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을 확충했으며, 지속적인 이벤트는 기본이고, 고정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부녀회와 기업체와 자매결연 등을 맺었다. 인터넷 쇼핑의 기법인 '공구'(공동구매)는 물론이고, 노점좌판까지 규격화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인의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과 판매기술 교육을 통해 전문상인으로 육성한 일이다.
  
  "교육은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아요. 재래시장이 상인들에게 친절교육을 했다고 해서 상인들이 금방 친절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나름 친절해졌다고 해서 바로 고객이 늘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상인들이 변하는 게 눈에 띄어요. 강사들이 교육하고 나면 기가 막히게 잘하고 상인들이 변하는 게 바로바로 눈에 들어와요. 교육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큰데, 상품을 진열하고 고객과 대화하는 것부터 달라져요. 반복교육을 하면 대부분 변하게 되죠. 그러한 교육의 열매는 당장 열리지 않지만, 길게 보고 궁극적인 변화를 위한다면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그 교육 또한 현장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일정한 한계를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장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재래시장의 전문가가 없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러기에 교수들을 만나면 학생들을 훈련시켜 현장에 투입해달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는다.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히트치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청주에서 노력한 여러 방안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은 청주시가 최초로 도입한 재래시장상품권이다. 그 효과를 보자.
  
  "공무원 한 명이 제대로 하면 큰 성과를 내게 되는데, 재래시장 상품권이 바로 그 결실이죠. 청주시의 권병홍 경제과장이 열심히 해서 재래시장 상품권이 이뤄졌어요. 2003년 12월 1일 전국 최초로 재래시장상품권이 발행되었습니다. 2006년 5월말 현재 43억5000만원 어치가 발행이 되었고 판매가가 37억 원이나 됩니다. 청주에 재래시장이 14곳 있는데 그 중 육거리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이 70%를 차지하니 우리로서도 가장 성공한 방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죠."
  
▲ 육거리시장은 재래시장상품권을 통해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는데 실마리를 찾았다.ⓒ희망제작소

  재래시장 상품권은 선물용 등으로 많이 나간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자체나 기업 등에서 많이 이용하는데 특히 명절 즈음 재래시장 상품권 선물 캠페인도 벌인다. 기업체나 공무원을 중심으로 이왕이면 재래시장상품권을 쓰자는 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그들의 바탕에 건강한 지역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본다.
  
  재래시장 측으로서는 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1212개소나 되는 가맹점을 확보하고, 단일화된 브랜드 마케팅을 벌이는 노력 등을 아끼지 않는다.
  
  그처럼 지역의 각 주체들의 노력들이 합해져 재래시장상품권이 재래시장을 살리는 효자역할을 하고 있고, 청주시에 이를 벤치마킹 하러 오는 발길 또한 줄을 잇는다.
  
  "재래시장 상품권의 매출확대 효과가 아주 큰 것은 아닙니다. 회수와 판매를 계산해보니 매출의 0.7%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효과는 고객층에 변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입니다. 궁극적으로 고객창출의 효과라고 봐도 무방하죠. 예전에는 중년층 중심으로 재래시장을 찾았다면 상품권이 생기면서 젊은 층들이 상품권을 이용하고 있어요. 재래시장에 대한 옛 추억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그들이 상품권을 계기로 재래시장을 한번 찾아보고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죠. 깎아달라고 졸라대는 사람 사는 맛, 대형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맛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서서히 고객층이 바뀌더군요."
  
  지금 당장 그들이 재래시장에서 쓰는 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아직도 머리 희끗한 사람들이 더 많지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그 젊은이들은 재래시장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도 발맞춰 움직여줘야 해요. 젊은이들, 아기 엄마들도 많이 오는데, 고객이 바뀌니 상인들도 서서히 젊은 층으로 바뀌더군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그 고객에 맞는 상품이 없다는 겁니다. 상품을 빨리 개발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상인이 그 개발을 먼저 나서서 하지 못하는데 이런 것은 전문가들이 도와주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래시장 전국연합회가 결성되다-벤치마킹하러 오는 전국의 상인과 공무원들
  
  재래시장의 어려움은 한 두 곳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한국 유통경제의 구조변화와 맞물리면서 일어난 전체 재래시장의 어려움이다. 이에 청주시에 재래시장 상인연합회가 생겼듯, 전국의 모든 재래시장에서 소소한 연합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재래시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보태져 '재래시장 육성법'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배경으로 생긴 것이 전국연합회다.
  
  "2006년에 들어서 전국재래시장연합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재래시장육성법에 따라 이뤄진 거죠. 중소기업청에서 힘을 많이 썼습니다. 설립은 됐는데 2006년도의 준비단계를 거쳐 2007년부터 실질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소기업청에 재래시장과가 있고 시장경영지원센터라는 게 있어서 적극적으로 재래시장을 돕게 되는 거죠. 중소기업청과 상인연합회,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삼박자로 노력을 경주하고 있고, 다들 힘을 보태고 있으니 결실이 맺어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육거리시장의 현황도. ⓒ희망제작소

  청주 육거리시장은 재래시장 가운데에서도 성공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육거리시장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녀간 상인들이나 공무원들이 5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자랑할 단계가 아니며, 자신도 이제 첫발을 뗀 수준이라고 이야기 한다.
  
  "첫발을 뗀 정도죠. 엄정히 말하자면 초보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걸음을 떼고 당당히 걸으며 그 결실이 제대로 맺어졌을 때 성공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직도 부족하다는 그들의 말은 사실이다. 재래시장은 아직도 부축을 필요로 한다. 지금도 수많은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한숨을 지을 테고, 그중 몇몇은 장사를 접을지도 모르며, 또 일부재래시장은 그 숱한 영광과 상처를 뒤로 한 채 사라져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재래시장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더 많은 수의 상인들이 흔들리는 다리를 굳건히 땅에 대고, 상처 많은 손으로 물건을 담고 있을 게다. 얼굴에는 웃음을 띤 채로, "또 오라"는 말을 잊지 않고.
  
  그러기에 민성기 회장을 비롯해 육거리시장의 수많은 상인의 목소리에서, 강인한 눈빛에서 어려움의 그늘이 언뜻 비치지만, 그보다 강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강한 생명력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무릎 꿇을 그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감히 우리 재래시장의 미래를 함부로 어둡다고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국민들이 재래시장에 대한 애정을 거둔 것이 아니라면 분명 희망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반 서적으로 분류를 할까 아님 전공과 관련된 서적으로 분류를 할까 고민을 하다 전공서적으로 분류를 하였다. 새터민과 관련된 소설은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국내를 벗어나면 통 소식을 알 수 없고, 새터민의 한 단면을 나타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됐다. 어디로 떠돌아 다녀야 할지 모르고 오늘 내일 언제 다시 송환될지 모르는 새터민의 그 실상을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다.

물론 새터민이 다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나오는 바리의 가족들은 중국으로 탈출하여 마사지를 배워 베트남 통킹으로 와서 마사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도 마사지 하나만으로 북한에서 지냈던 지난 날보다는 많이 행복해보였다. 지금 이 시간 새터민들은 또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하면 완전히 마음 속의 억압을 풀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중국으로 탈북을 한 새터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중국 공안에 잡힌다면 두말없이 다시 북한으로 소환되기에 안잡히기 위해서 꼭꼭 숨어있다. 숨어있다가 여럿이 공사관, 영사관, 외국인 학교로 가서 목숨을 구명해달라는 소식들을 접하면 매일 하는 말은 또 탈북이야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남한에 정착하면 잠시의 환대가 있지만 얼마가지 않아 하나회에서 갇혀버리는 생활을 한다.

그 이후는 어떨까? 남한에서 적응을 한 사람들은 유명세를 타고 잘 살고 있다. 반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자살 또는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거나 제 3국으로 떠나버리는 실정이다.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지 국민들의 무관심인지는 알 수 없어도 다만 해외를 나갈때는 확실하게 입국거부를 당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노력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바리가족이 남한에 와서 정착을 해서 산다고 해도 여타의 새터민과 똑같다. 반겨주는 마음은 잠시 정부의 관리와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없이 남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인권탄압이 심하고, 제 3국은 새터민을 잡으려고 혈안이고, 남한는 모르쇠로 일관하여 새터민을 정착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차별이 아닌 다른 점을 이해하는 것이 새터민을 위한 관심이다.

어디를 가도 생존의 투쟁이다. 바리도 북한에 있든 남한에 있든 통킹에 있든 간에 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마사지 기술을 연마를 해야할 것이다. 바리의 가족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거리를 찾아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 거기에서 노력을 해도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 통킹에 사는 바리가족의 주변사람들이 전부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따뜻한 마음씨는 가지고 있었다. 생존의 연속에도 주변사람을 챙기는 그 마음이 눈시울을 적신다.

바리가족이 되든 다른 새터민이 되든 간에 이런 사람들이 남한에 정착해서 살게된다면 최소한 내치지는 말아야 한다.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에 눈물과 서러움과 굴욕을 당한 상처들이 아물지도 못한 마당에 또다시 상처를 주게 되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사나 죽으나 그게 그거... 죽지 않기 위해 나왔는데 같은 민족인데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같은 민족인지 의심스럽다.

책 내용과 상관이 없는 글이었지만 지금 이순간도 살기 위해 북한을 빠져나오는 새터민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검 심리분석실에서 피의자 한 명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고 있다. 가슴과 배 등에 붙은 센서를 통해 포착된 생리변화는 컴퓨터 모니터에 몇 개의 그래프로 그려진다. 신동연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심리분석실. 한 피의자가 가슴과 배, 손가락, 이두박근에 센서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뇌파 검사를 위해 두피에도 센서를 붙였다.
“당신이 돈을 훔쳤습니까?”
“아니요.”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 컴퓨터 모니터에는 그래프들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분석관의 눈빛이 반짝인다. 거짓이 밝혀진 걸까. 피의자의 손이 가볍게 떨린다. 거짓말탐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정확도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정재영 심리분석실장에게 “실험 삼아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청했다. 정 실장은 대뜸 “100만원 내기를 하자”고 했다. “구체적인 불이익이 있어야 거짓·진실 반응이 나옵니다. 그냥 재미로, 장난 삼아 하면 심적인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응이 제대로 나오지 않지요.”

만약 양쪽 당사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를 해서 한쪽은 ‘거짓’, 반대쪽은 ‘진실’ 반응이 나올 경우 정확도는 99%를 넘는다는 설명이다. 피의자와의 ‘진실게임’에서 이기려면, 고도의 전략과 노하우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질문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성폭행 사건의 경우 따귀를 때렸느냐, 옷을 찢었느냐 등의 세부적이고 분명한 사실관계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재판부에서는 거짓말탐지 결과를 법정 증거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황 증거로 받아들인다. 거짓말탐지기에서 유죄로 나타났을 경우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는 확률은 94%에 달한다는 게 정 실장의 설명이다.

검찰의 심리분석에는 첨단 행동·진술분석 기법까지 동원된다. 이른바 ‘통합심리분석 시스템’이다. 지난해 1월 분석실에 의뢰된 창원 독극물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30대 여성 A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초등학교 2학년생 딸에게 독극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A씨는 필사적으로 혐의를 부인했다. 결정적 물증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 단계에서 거짓말탐지기와 뇌파 조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했다. 심리분석실은 A씨를 상대로 정밀 행동분석에 들어갔다. 김재홍 분석관과 문답을 주고받는 A씨 앞에는 고성능 카메라 6대가 놓여 있었다.

본격적인 분석은 A씨가 돌아가고 난 다음 시작됐다. 1초에 30프레임꼴로 찍힌 수십만 장의 스틸 사진을 차례로 넘겨가며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표정을 잡아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A씨의 표정에는 딸에 대한 슬픔이나 범인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 분석관의 물음에 경멸하듯 미소 짓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 분석관은 ‘A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창원지검에 보냈다. 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람의 얼굴은 수천 개의 미세근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근육 중에는 의식으로 통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반면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이른바 ‘불수의근’도 있어요. 0.25초의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나는 미세 표정을 통해 인간의 온갖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진술분석은 용의자나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을 따져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기법이다. 김미영 분석관은 “진술 내용을 단어, 어절, 문장으로 쪼개 통계를 내보면 진술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숨기고 싶어하는지 밝혀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용의자들은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타인’ 혹은 ‘다른 사람’으로 애매모호하게 지칭하곤 한다. 또 사건 순간보다 사건 현장까지 가게 된 경위를 더 자세하게 진술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실에 가까운 진술의 경우 소리나 냄새, 느낌 같은 오감(五感) 정보가 들어가는 등 구체적인 데 반해 꾸며낸 이야기는 추상적이다. 결국 심리분석도 “남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 땐 두려움 탓 생리변화 단전호흡 등으로 감출 수 없어


거짓말탐지기의 원리와 절차

수사단계에서는 물적 증거보다 범죄자의 자백과 목격자 진술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종결을 위해선 사람의 말로 구성된 증거, 즉 구술(口述)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수사의 성패는 이처럼 물적 증거뿐만 아니라 구술 증거 확보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좌우된다. 구술 증거를 분석하는 대표적인 기구가 거짓말탐지기다. 호흡 패턴과 땀 분비의 양, 맥박, 혈압 등 여러 개의 생리학적 변화가 측정되면서 다수의 그래프로 나타난다.

거짓말 판독의 기준은 어떤 종류의 질문에 얼마만큼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가다. 즉, 일정한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른 종류의 질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생리적 반응을 나타내면 거짓말로 판단한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면 발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교감신경계가 작동하고 일정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다.

검사 절차는 보통 사전면담, 실제검사, 차트 분석, 사후면담 순으로 진행된다. 사전면담에서는 우선 피검사자와의 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사람은 검사를 할 수 없다. 전날 수면을 취하지 않았거나 과음한 사람도 부적격자이다.

실제검사는 몇 가지 질문 종류를 혼용하여 3회에 걸쳐 실시한다. 5분씩 15분 정도 소요된다. 사후면담에서는 차트 분석에서 나타난 결과를 피검사자에게 알려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사건 초기에 신고자·피의자·목격자·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숨겨진 증거를 찾고 추가적인 수사단서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일정한 한계도 있다. 피검사자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사실까지 탐지하지는 못한다. 실제로는 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이었지만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성폭행을 했다고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진실반응으로 나온다.

‘나 같으면 그깟 거짓말탐지기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어떻게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유료 웹사이트도 있다. 보통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신발 안에 압정을 미리 넣고, 답변할 때 눌러서 그 통증으로 정상적 생리반응을 왜곡하는 것이다. 또한 성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상상하거나 비정상적인 호흡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우는 장면도 종종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그래프가 특이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검사관이 검사를 중지하고 왜곡행위를 못하게 한다.

필자도 얼마 전 왜곡행위를 시도하는 사람을 검사한 적이 있었다. 호흡 패턴과 땀샘 분비가 극히 비정상적이었다. 검사를 중단하고 “속일 것이 없다면 왜곡행위를 하지 마라”고 권고했다. 다시 검사를 시작했지만 또다시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계속 거짓말탐지기와 대결을 벌이는 것이었다. 몇 번의 권고 끝에 그는 결국 실토했다. 사실 자신의 직업은 단전호흡 수련원의 원장이고 ‘기를 돌리는’ 방법으로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하고 싶었다고. 결국 다시 정상적인 상태에서 검사를 재개한 후 진술의 허위 여부 판독이 가능해졌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행정학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 K 리그 마지막 정규 리그 경기가 치러진 14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경기에 이기더라도 6강행이 쉽지 않았던 대전이었기에 이날 승리와 6강 진출확정은 팬들에게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그동안 '대전 시민구단'이라는 명예로운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던 '가난'이라는 단어. 대전은 팬들 사이에서 가난한 시민구단으로 불려왔다. 재정이 어려운 만큼 창단 10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날 '기적'이 없었더라면, 창단 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란 꿈은 다시 꿈으로만 머물러야 했었다.


 

시즌 초 성적 부진과 최윤겸 전 감독과 이영익 수석코치 간의 불화로 인한 동반 퇴진까지. 그동안 정말 마음고생이 많았던 대전 팬들에게 이번 6강 진출은 생각지도 않았던 큰 감동이었을 것이다.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녀팬들이 보였고, 많은 사람이 목이 터져라 대전을 외쳐댔다. 몇몇 대전 서포터즈는 흥분한 나머지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선수들에게 달려갔고, 당황한 경호원들이 재빨리 뛰어가 그들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아마, 경호원들도 그런 상황이 즐겁긴 마찬가지였을 듯싶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는 팬을 목격한 구단 관계자는 이내 달려와 경호원을 말리는 모습을 보였다. 구단 관계자도 뛰어내려 온 팬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했다.


 

▲ 경호원에게 붙잡힌 채 " 고종수 " 를 외치는 팬에게 다가가 포옹해주던 고종수



 

▲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있던 팬에게 다가가 포옹해주는 강정훈


 

▲ 경기 종료 1시간후에도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팬


 

▲선수단 버스가 있는 곳에는 팬들이 가득했다. 동원된 경찰들이 일렬로 서서 대기하고 있었고, 팬들은 응원가를 부르면서 선수들을 기다렸다.


 


 

▲ 선수들을 기다리는 팬들


 

▲ 'I♥DCFC'


 


 

▲ 계속 깃발을 흔들며 응원가를 부르던 대전 서포터즈


 

▲ 버스가 나오자 팬들은 버스를 따라가며 선수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 버스가 떠나자 아들과 함께 나온 데닐손

선수들이 떠나고 나서도 응원가를 부르며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던 팬들. 마지막까지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극적으로 6강에 합류한 만큼 대전이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결과로 팬들에게 다가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최고 인기 오락 프로그램 MBC ‘무한도전’은 진행자인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 멤버들에게 많 변화를 초래했다. 물론 6명의 멤버에 의해 ‘무한도전’이 전개되지만 ‘무한도전’은 6명의 멤버의 인기를 비롯한 연예인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 MC였지만 ‘무한도전’의 출연으로 최고의 자리를 확실하게 굳혔다. ‘무한도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부터 진행자로 나선 유재석은 초반 시청률 부진을 극복하고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키운 일등공신이지만 그 역시 ‘무한도전’의 혜택을 많이 봤다.

특히 유재석은 기존의 겸손하고 성실한 진행이외에 ‘무한도전’을 통해 순발력과 개그 연기, 재치등을 유감없이 발휘해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MC자리를 굳혔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통해 연인 나경은 아나운서를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2인자로 불리는 박명수는 ‘무한도전’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호통개그 등 박명수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개그가 ‘무한도전’을 통해 숙성시킨 뒤 다른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박명수는 ‘무한도전’을 통해 가장 각광받는 패널로 자리를 잡은 영광을 누리고 있다.

‘노브레인 서바이벌’로 “두번 죽이는 거에요”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인기를 누렸던 정준하가 이 코너를 퇴진하면서 인기가 주춤했지만 ‘무한도전’의 출연으로 인기를 되찾았다. 그는 ‘무한도전’출연이 계기가 돼 인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주연으로 나서는 영광도 누렸다.

‘개그콘서트’로 연예인으로서 존재를 확인시킨 정형돈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등 버라이어티쇼에 나섰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의 출연을 통해 캐릭터를 통한 이미지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으로 부상했다. ‘무한도전’을 발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의 MC까지 맡는 위상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케이블 방송에서 활동하다 지상파TV로 활동무대를 옮긴 노홍철은 ‘무한도전’을 통해 확고하게 개성이 뚜렷한 연예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단번에 인기 연예인 대열에 합류했으며 노홍철 역시 ‘무한도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방송 3사를 누리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행운을 잡았다.

하하는 시트콤 ‘논스톱3’로 연예인으로서 존재확인을 시킨 뒤 주춤했다가 ‘무한도전’을 계기로 화려한 비상을 했다. ‘무한도전’을 하면서 영화, 라디오,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에 진출했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6명의 멤버에게 엄청난 위상변화를 초래했고 인기면에서나 수입면에서 많은 행운을 가져다 준 프로그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