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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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적으로 분류를 할까 아님 전공과 관련된 서적으로 분류를 할까 고민을 하다 전공서적으로 분류를 하였다. 새터민과 관련된 소설은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국내를 벗어나면 통 소식을 알 수 없고, 새터민의 한 단면을 나타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됐다. 어디로 떠돌아 다녀야 할지 모르고 오늘 내일 언제 다시 송환될지 모르는 새터민의 그 실상을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다.

물론 새터민이 다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나오는 바리의 가족들은 중국으로 탈출하여 마사지를 배워 베트남 통킹으로 와서 마사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도 마사지 하나만으로 북한에서 지냈던 지난 날보다는 많이 행복해보였다. 지금 이 시간 새터민들은 또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하면 완전히 마음 속의 억압을 풀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중국으로 탈북을 한 새터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중국 공안에 잡힌다면 두말없이 다시 북한으로 소환되기에 안잡히기 위해서 꼭꼭 숨어있다. 숨어있다가 여럿이 공사관, 영사관, 외국인 학교로 가서 목숨을 구명해달라는 소식들을 접하면 매일 하는 말은 또 탈북이야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남한에 정착하면 잠시의 환대가 있지만 얼마가지 않아 하나회에서 갇혀버리는 생활을 한다.

그 이후는 어떨까? 남한에서 적응을 한 사람들은 유명세를 타고 잘 살고 있다. 반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자살 또는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거나 제 3국으로 떠나버리는 실정이다.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지 국민들의 무관심인지는 알 수 없어도 다만 해외를 나갈때는 확실하게 입국거부를 당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노력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바리가족이 남한에 와서 정착을 해서 산다고 해도 여타의 새터민과 똑같다. 반겨주는 마음은 잠시 정부의 관리와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없이 남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인권탄압이 심하고, 제 3국은 새터민을 잡으려고 혈안이고, 남한는 모르쇠로 일관하여 새터민을 정착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차별이 아닌 다른 점을 이해하는 것이 새터민을 위한 관심이다.

어디를 가도 생존의 투쟁이다. 바리도 북한에 있든 남한에 있든 통킹에 있든 간에 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마사지 기술을 연마를 해야할 것이다. 바리의 가족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거리를 찾아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 거기에서 노력을 해도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 통킹에 사는 바리가족의 주변사람들이 전부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따뜻한 마음씨는 가지고 있었다. 생존의 연속에도 주변사람을 챙기는 그 마음이 눈시울을 적신다.

바리가족이 되든 다른 새터민이 되든 간에 이런 사람들이 남한에 정착해서 살게된다면 최소한 내치지는 말아야 한다.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에 눈물과 서러움과 굴욕을 당한 상처들이 아물지도 못한 마당에 또다시 상처를 주게 되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사나 죽으나 그게 그거... 죽지 않기 위해 나왔는데 같은 민족인데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같은 민족인지 의심스럽다.

책 내용과 상관이 없는 글이었지만 지금 이순간도 살기 위해 북한을 빠져나오는 새터민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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