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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과테말라. 핸드블렌더로 갈았을 때 다른 데서 산 것보다 속껍질(?)이 많이 나와요. 로스팅과정이 달라서 그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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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17-11-0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스팅과정도 다르고 배전에 차이도 다를수 밖에 없는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일반적으로 과테말라의 경우 배전을 강하게 볶습니다. 강하게 볶는다는건 2차 크랙 후로 센터컷(고객분께서 말씀하신 속껍질)이 원두팽창으로 인해 다 배출이 되지만, 저희가 판매중인 과테말라는 2차크랙 전단계에서 배출을 하다보니 센터컷이 100% 배출이 안되는 상태이오니 이점 참고하여 이용 부탁드립니다. 이후 이용중 불편사항은 고객센터 1대1상담 이용해 신고해주시면 신속히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1, 2 강 모두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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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 안티 - 스트레스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지음 / 클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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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감정다스리기에 도움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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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배경식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봉창 의사는 원래 기노시타 쇼조란 일본이름(창씨 개명의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을 쓰는 그저그런(?) 식민지 백성이었다. 

현재의 나라 상태나 자신의 처지를 식민지여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저 정통 신민인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어서 그렇다고 자학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식민지에서 태어나 '문제의식'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찾아간 상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면서 역사의식에 눈을 뜬 것 같지도 않다. 뭐랄까... 그가 천황을 척살할 결심을 한 과정이 너무 무성의하게 설명된 것인지, 그가 이렇게까지_목숨을 거는 것_할만한 어떤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왜 갑자기 저런 생각을 했지? 하는 생뚱맞음. 한편으로는 무덤덤하게, 무심하게 자신의 목숨을 그리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게, 그 마음을 내가 못 쫓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자신의 의지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짐작만을 할 뿐이다. 


129쪽.


"제 나이 서른하나입니다. 앞으로 31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체적 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해로 왔습니다. "



상해에서의 김구 선생의 힘든 생활. 그리고 해방후 신문기자가 찾아갔던 이봉창의사의 친형 이범태 님의 곤궁한 생활에 마음이 저릿했다. 


20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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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여학생들 어디로 갔나]그후 7년, 그녀는 어디에
[동아일보 2004-09-12 22:01]
[동아일보]

《21세기 디지털시대는 여성의 세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각 대학의 수석합격자나 수석졸업자를 여성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서도 여학생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외무고시 등에서 여성에게 가점을 주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말 그럴까. 취재팀은 1997년 나온 페미니즘 보고서인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에 등장하는 여학생들이 지금 뭘 하고 지내는지 추적했다. 또 현재 여대생들은 취업과 관련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어본 결과를 4회에 걸쳐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그후 7년’을 시리즈로 내보낸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것은 남자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래가 보장되는 프리미엄이지만 여성에게는 오히려 살아가는 데 장애가 됩니다.”

이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사법시험 전체수석을 했던 당시 사법연수원생 정모씨(34)가 했던 말이다.

7년 후 그의 생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현재 지방법원 판사인 정씨는 “검찰이나 법원에서 성차별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일을 하지 않는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며 로펌 등의 입사에 성차별이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95학번이었던 권정하씨(30)는 며칠 전 첫아이를 출산하고 출산휴가 중이다. 그는 행정대학원을 거쳐 뒤늦게 S보증기금에 입사했다.

그러나 정씨나 권씨처럼 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예외였다. 인터뷰에 등장한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한달에 걸친 추적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취직을 못해 동문들과 연락을 끊었거나 결혼한 경우로 추정된다. 취직을 했더라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인 경우 접촉을 피했다.

당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강모씨(33)는 “당시 여학생들은 지금쯤 30대 초반으로 한창 출산을 하거나 할 시기”라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면 별로 자신을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역시 수차례 언론사 입사시험에 실패하고 어린이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였던 한설혜씨(37)는 교수가 되지 못하고 서울 송파구보건소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여성의 사회참여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육아”라며 “이 때문에 교수임용에서 여성이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1년 박사학위 취득자 중 여성은 22.9%에 이르지만 대학의 여성교수 비율은 14.1%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국공립대의 여성 교수 비율은 8.8%에 불과하다.

취업이 안 되는 여대생들은 일단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형편이 허락하는 경우 해외유학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우리 대학원에 기혼 여자선배 2명이 있는데 공부하랴 집안일하랴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1년차 김모씨 역시 2000년 메릴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전남대 컴퓨터공학과 96학번 L씨 N씨 Y씨의 동기 양동섭씨(29)는 “당시 졸업생 80명 중 8명이 여학생이었는데 이후 동창회에 나오지 않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시인 문정희는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노래했다.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특별활동에도 뛰어났던 그녀…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러 저리 밀쳐져서/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부엌과 안방에 갇혀있을까/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그 많던 여학생들은…’▼

재미교포 박상이씨(38·당시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과정)와 그 친구들이 1997년 8월 출간한 성차별에 관한 현장보고서.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여성 200여명의 경험담을 통해 대학과 취업과정에서의 성차별을 생생히 고발해 큰 파장을 불렀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여성학 관련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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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세즈 2004-09-1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처음 올리신 분은... 저 기사 댓글 보고 또 맘 상하셨다네...
나도.. ^^;; 저런 기사 올라오면 댓글은 아예 안보게 되지... 밖에선 찍소리도 못하는 것들이 술먹고 지네들끼리 험한 소리 하듯이 댓글도 찍찍 내뱉어내곤 하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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