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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역사 ㅣ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8
자크 브누아 메샹 지음, 이봉재 옮김, 조경진 감수 / 르네상스 / 2005년 10월
평점 :
어렸을때 살던 집은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사각형으로 왠 그 집 마당 중앙에 나름대로는 제법 큰 화단이 있었다. 꽃이피기 시작하는 봄부터 화단으로 이용되다가 김장을 담그는 11월이 되면 김장독을 묻어두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효율적이지 않았나 생각도 된다. 모두가 못살던 시절이라 푸성귀라도 심어 한여름 반찬거리로라도 썼다면 주머니 사정이 더 좋아졌을텐데, 집주인 생각이었는지는 따뜻한 날에는 늘상 꽃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덕분에 화단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 화단의 둘레에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장독들이 겹으로 놓여있었는데, 꽃과 어울린 장독은 보기에 참 좋았었다. 볕이 좋은 가을날엔 문간방집에서 내어놓은 작은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여러줄에서 휘날리는 빨래감이 휘날리는 것을 보며 낮잠을 자는 것도 큰 재미였다. 그 곳이 내가 첫번째로 경험한 나름대로의 정원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게되고 동양의 몇 나라의 정원을 구경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정원의 역사]라는 책은 제목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책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이 책은 그냥 정원의 역사가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정원의 역사로 약간의 편협한 취향을 동반했다. 그 편협함은 영국정원에 국한되고 있기는 한데, 역자의 해설에 이미 나와있어 마음의 준비를 먼저 하고나서 읽을 수 있다. 저자가 감탄하는 프랑스의 정원과 알람브라에는 가 본적이 없어 사진으로만 접하는 것이 영 아쉬웠다. 책을 읽고 가보고 싶은 곳만 늘었다.
물론, 몇몇 묘사는 사진이 없어 상상력에 의존하여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대한 말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영국의 정원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찬성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는 했지만, 영국정원과 프랑스 정원의 느낌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상태는 사진이 많아 보기가 편안했다.
내가 아는 정원이야기
중국의 예원은 쓰촨 성 관리 판윈돤이 아버지를 위하여 지었다는 정원으로 완성하는데만 18년이 걸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아버지는 정원이 완공된 후 몇년을 못살고 졸 하였다고 했다. 면적이 2만㎡이고 원근감을 강조하여 넓어 보이도록 설계하였다는데, 내가 본 중국의 첫번째 정원이라 그런지 예원은 남다르게 아름다웠다.

지붕마다 올려져 있는 인형들은 선녀같기도 하고 재상같기도 한데, 많은 종류의 조각들은 옷자락 모양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와 용은 비늘과 수염까지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인다. 지붕을 올려다보면서 수염도 돌일까 의문을 갖었었다. 물론 아직도 확인된바는 없다. ^^ 위의 사진은 담을 타고 가는 용의 모습이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양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이 용에는 사연이 있는데, 판윈돤이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발가락에 숨은 의미가 재밌다. 옛날 중국에서는 용을 황제의 상징 생각해서 민간인이 용과 관련된 것을 지니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단다. 그런데, 판윈돤은 발가락 세개인 용을 만들어 얹고 다섯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는 용과는 다른 생명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권세가 대단하지 않았다면 황제가 그 만든 이유를 물어 목을 칠 수도 있을만한 모양 아닌가? 자세히 보면 용의 턱 밑에 두꺼비가 보인다.
예원에는 공연장이 있는데, 경극을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이 있다. 2층 높이에 만들어진 무대는 위에서 올려보기에도 좋고 2층에서 보아도 좋게 만들어 놓았다. 너른 관객석에 의자와 탁자가 깔리고 사람들이 먹고 마시면서 경극 공연을 구경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그 활기가 느껴진다. 상하이를 방문하게 된다면 빼 놓지 말고 들려야 할 장소가 아닌가 한다.
일본 교토에 있는 로쿠온지에 안에 위치한 킨카쿠지(금각사)는 이 화려한 금각으로 인해 금각사로 불리운다고 한다.
지금 있는 금각은 1950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것이라는데, 1987년에 금박이 보수되어 옛날의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소개되어 있다. 일년에 한번씩 금칠을 해서 현재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니 금을 긁어다 좀 팔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뉴스에 나오고 싶지 않아 그냥 눈으로만 감상 했었다.
2, 3층에는 옻칠을 한 뒤 순금의 금박을 입히고 지붕은 널조각으로 이은 지붕이다. 금각은 연못을 중심으로 중심으로 하며 지방 영주들이 헌납한 명석들이 배치되어 있다는데, 돌 볼줄 모르는 눈이라 그런지 아. 그렇구나 정도였었다. 연못에 우쑥 솟은 누각 뿐만아니라 주위에 잘 지어진 일본식 정원 또한 볼거리라고 하는데, 연못을 주위로 산책할 수 있는 코스로 걸어가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금각사의 모습을 보는 것 외에는 큰 볼거리는 없었다. 사연을 잘 모르면 재미없는 법인데, 나에게 금각사가 꼭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금각은 교토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불리고 교토관광의 필수코스로 찾는 곳이니 교토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교토에 있는 용안사(료안지)는 일본 중세 때 무인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도쿠다이지 집안의 별장을 양도 받아 세운 선종 사찰로 흰 모래를 깔고 크고 작은 15개의 돌을 배치한 정원이 유명하다.
15개의 돌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더라도 한개 이상은 반드시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충분히 가지지 않더라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뜻도 그럴사 하고 보기도 그럴사 하다. 정원이라하면 꽃과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을 뒤바꾸어 놓은 정원이다.
나는 이 정원을 방문했을 때, 이런 말이 귀에 울렸다. "연애 하고 싶으냐?" 바닥 모양이 딱 그 화장품 광고의 바닥 모양이니 뭐 그럴 법 하지 않나? ^^
비원은 창덕궁 북쪽 뒷편의 숲을 가리키는 말로 조선시대에는 통용되지 말이란다. 그러다가 1903년 11월 창덕궁 후원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비원(秘苑)을 증설하면서 비원이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했다니 그때의 비원은 기구일 따름, 정원을 지칭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그랬던 것을, 일제의 입김으로 창덕궁 자체를 비원이라 불러 궁을 격하시키게 이른다. 창덕궁의 후원이고 왕만의 정원이라 출입이 되지 않던 금원이 일본 실력자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고 나중에는 일부러 일반인을 끌어들여 관광지로 삼아버렸었다. 그 당시에 왕이 존재함에도 아무나 들어와서 '벤또' 먹고 벛꽃구경하고, 동물원, 식물원 구경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창경궁 처럼 짓밟히지는 않았으나, 세월이 바뀌어 이젠 궁의 모습을 찾아 감에도 전체를 비원이라 불러 우리의 살아있는 궁궐을 정원 취급하는 일은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옥류천이 개방된다고 옥류천을 찾았으나 내가 정작 보고 싶었던 것은 청의정이었다. 마루는 사각형이고, 천정부는 팔각으로 얹고 그 위를 원형의 초가지붕으로 덮은 모양으로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관념을 표현한 것이란다. 청의정 앞에는 한 서너평 됨직한 논이 있는데 왕이 농사지었던 논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이 숨겨진 정원에 있는 왕의 농사였다. 상징적인 의미이겠지만 스스로 겪어보고 백성의 고충을 생각하려는 왕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그런데 몇명의 왕이나 저 모내기를 하였을까?
우리나라 궁궐을 산책할때 만나게 되는 잔디는 일본이 궁을 공원화 하면서 심어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잔디가 깔려 있는 공간들은 대부분 건물이 있던 공간이라고 하고 우리나라 정원에는 잔디를 쓰지 않았다고 들었다. 잔디는 산소를 만들때만 썼다고 전해지니 옛 어른들 눈으로 보기에는 일본이 우리나라 궁을 묘지로 만든 것 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의문. 책에 나온 창덕궁 비원의 사진은 원본에도 있던 사진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편집할때 들어간 사진일까? 원본에도 있다면 저자가 일본의 정원과 헤깔린 것은 아닐까? ^^
이 책에서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정원 중 이화원도 최고의 정원이다. 청조의 별궁으로 칭이위안(청연방)이라 불렸던 것을 1764년 건륭제가 상당히 확장하고 장식해서 이화원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60년 아편전쟁 때 황폐해진 것을 1894년 서태후가 본인의 환갑 축하연을 베풀기 위해 해군 증강용으로 영국에서 차용한 돈까지 쏟아부어 개축했는데, 이것이 결국에는 국력을 약화시켜 청·일전쟁(淸日戰爭)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니 지금은 보기 좋아도 평민들이 보기에는 원흉 아니었을까 싶다.
이화원 안에는 비를 안맞고 산책할 수 있는 750m에 달하는 긴 복도고 있고 각종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사람의 손으로 팠다는 곤명호다. 곤명호를 판 흙으로 만수산을 만들었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한 겨울 꽁꽁 얼은 곤명호 위를 사람들이 걸어간다. 나도 꼭 건너보고 싶었는데 짧은 여행을 하는 일행이 함께 있는 여행자에게 그런 호사는 누리기가 힘들다. 생각나는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써봤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정원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나는대로 술렁술렁 쓰는 것이 아니라 테마를 정하고 글을 써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실행을 하지도 못할 생각을 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