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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워싱턴 국방부 청사 사망 또는 실종 125명, 세계무역센터 사망 또는 실종 2,500~3,000명 등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명 피해만도 2,800~3,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 외에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느끼기에도 가슴이 서늘했던 그 사건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소설의 9살 소년 오스카도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으며 아버지의 방을 배회하던 중 긴 파란색 꽃병을 깨게되고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쓰인 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자그마한 열쇠. 그 후로 아버지의 흔적인 열쇠의 정체를 밝히려는 오스카의 여정이 시작된다. 성이 "블랙"인 사람들을 찾아나서며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오스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이사이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할아버지가 사랑하던 여인의 동생이자 할아버지를 사랑하며 40년을 기다린 할머니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펼쳐진다. 할아버지는 두 자식을 모두 잃은 샘이고 두 자식을 잃은 사건 9.11과 드레스덴의 폭력이 맞물린다. 충격으로 말도 잃은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기다리느라 40년을 허송세월한 할머니, 한구석이 텅 비어 버렸을 오스카 엄마의 아들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 모두 슬픔을 토해내야 끝날 일이다.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이 평범한 사람들이, 보복과 폭력의 광기에 정신 못차리는 자들의 희생량이 되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무거운 주제이건만 어디에도 정치, 종교, 인종,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를 잃은 9살 어린 소년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고,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여정과 그에 어울리는 상상력은 가슴아프지만 동정심을 구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다. 오스카의 부츠가 더이상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늘 그렇듯 누구에게는 부와 명예를 주지만, 하나하나 거론하지 못할만큼 많은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준다. 9.11이 작전화된 복수전 이었다면, 드레스덴 폭격은 연합군의 최대 실수였다. 군수공장이 없던 드레스덴에 퍼부워진 폭격은 한시간만에 만명의 사람을 태우고 녹여버렸다. 그 폭격에 사용되었던 폭탄의 이름은 블럭버스터(BlockBuster)로 흥행에 대 성공하는 영화를 말하는 그 말이 이 끔찍한 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 하늘을 날면서 폭격을 퍼붓는 자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고통도 죄책감도 덜 느끼겠지. 그 작전을 지시했던 아더 T 해리스는는 연합군 군사 재판에서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그의 말이 걸작이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이 자리에 앉혀졌다." 그 말에 무슨 답을 달 수가 있을까? 왠지 누가 누구를 비난해야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날마다 하고 사는 실수 이건만 누구의 실수는 이리도 크게 사람들을 상하게 한다는 생각에 기운이 다 빠져버린다. 손가락 하나 말 한마디로 몇만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이 기가막힌다.

편집은 독특하다. 오스카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재밌는 편집이다.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사진과 글들은 책에 더 큰 생동감을 주었다. 책이 일정간 줄간격과 여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깨지는 재미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