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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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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2004년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신주쿠 거리를 헤매다가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팔던 아저씨를 만났었다. 그 아저씨는 길을 헤매는 우리를 한국말로 헤매지 말고 라면 먹고 가라고 불러 앉혔다. 라면 한그릇을 시켜 나눠 먹는 우리에게 오뎅을 덤으로 주던 아저씨는 이야기 끝에 자신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던졌다.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는 한국에서 싸간 과자를 아저씨께 나눠드리고 돌아섰는데, 그때 는 아저씨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 아저씨가 살면서 느껴야 하는 그 기분을 같은 민족만이 우글거리는 땅에서 평안하게 살면서 어찌 알수가 있었겠나. 이 책을 읽고 그 기분을 어렴풋이 느끼자니 머리꼭데기에 묶어놓은 머리를 누군가 뒤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추성훈을 무릎팍 도사에서 알게 된 그때 보다 훨씬 와 닿는 기분이랄까?  연애 이야기라고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평화주의니 귀족주의니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그 어려움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조선이 일본 식민지라 일본인이었다가, 일본이 패한 후에 허둥대다보니 조선 반도는 둘로 나뉘어 버려, 어이없게도 국적을 선택해야하는 황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때, 어버지는 사상적 바탕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써주는 북쪽의 국적을 취득해 조선인이 되었다. 그렇게 조선인으로 열심히 살다가 더 넓은 세계를 만나야 한다는 대단한(?) 결심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 이런 사실은 많은 뒷 이야기와 복잡한 마음가짐이 따르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서는 완벽하게 쿨하다. 아버지도, 소설의 주인공인 그 아들도. 왕따인 상황도, 싸움의 상황도, 주변의 이야기도, 죽은 친구의 이야기도 속상하지만 쿨하다. 그리고 연애도 쿨 하다. 곳곳에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고 감동적이면서도 속상해지는 바람에 마음이 들쑥 날쑥한다. 책을 다 읽고 한번 더 훑어보면서 되새김했다. 그래도 남는 뒷끝이 있는데, 그건 마음으로 새기련다. 영화도 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책은 양장이고 표지를 벗겨내도 양장에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별일도 아닌데 깜짝놀랐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책장을 넘겼는데, 책갈피 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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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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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의 테러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워싱턴 국방부 청사 사망 또는 실종 125명, 세계무역센터 사망 또는 실종 2,500~3,000명 등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명 피해만도 2,800~3,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 외에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느끼기에도 가슴이 서늘했던 그 사건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소설의 9살 소년 오스카도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으며 아버지의 방을 배회하던 중 긴 파란색 꽃병을 깨게되고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쓰인 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자그마한 열쇠. 그 후로 아버지의 흔적인 열쇠의 정체를 밝히려는 오스카의 여정이 시작된다. 성이 "블랙"인 사람들을 찾아나서며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오스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이사이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할아버지가 사랑하던 여인의 동생이자 할아버지를 사랑하며 40년을 기다린 할머니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펼쳐진다. 할아버지는 두 자식을 모두 잃은 샘이고 두 자식을 잃은 사건 9.11과 드레스덴의 폭력이 맞물린다. 충격으로 말도 잃은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기다리느라 40년을 허송세월한 할머니, 한구석이 텅 비어 버렸을 오스카 엄마의 아들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 모두 슬픔을 토해내야 끝날 일이다.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이 평범한 사람들이, 보복과 폭력의 광기에 정신 못차리는 자들의 희생량이 되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무거운 주제이건만 어디에도 정치, 종교, 인종,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를 잃은 9살 어린 소년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고,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여정과 그에 어울리는 상상력은 가슴아프지만 동정심을 구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다. 오스카의 부츠가 더이상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늘 그렇듯 누구에게는 부와 명예를 주지만, 하나하나 거론하지 못할만큼 많은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준다. 9.11이 작전화된 복수전 이었다면, 드레스덴 폭격은 연합군의 최대 실수였다. 군수공장이 없던 드레스덴에 퍼부워진 폭격은 한시간만에 만명의 사람을 태우고 녹여버렸다. 그 폭격에 사용되었던 폭탄의 이름은 블럭버스터(BlockBuster)로 흥행에 대 성공하는 영화를 말하는 그 말이 이 끔찍한 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 하늘을 날면서 폭격을 퍼붓는 자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고통도 죄책감도 덜 느끼겠지. 그 작전을 지시했던 아더 T 해리스는는 연합군 군사 재판에서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그의 말이 걸작이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이 자리에 앉혀졌다." 그 말에 무슨 답을 달 수가 있을까? 왠지 누가 누구를 비난해야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날마다 하고 사는 실수 이건만 누구의 실수는 이리도 크게 사람들을 상하게 한다는 생각에 기운이 다 빠져버린다. 손가락 하나 말 한마디로 몇만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이 기가막힌다.

편집은 독특하다. 오스카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재밌는 편집이다.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사진과 글들은 책에 더 큰 생동감을 주었다. 책이 일정간 줄간격과 여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깨지는 재미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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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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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바논에 갔던 '나'의 이야기다. 이 에니메이션을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갈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 책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했다. 물론, 책을 본 후에는 더욱 에니가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옛 친구 보아즈와 술집에 들른 나(아리)는 반복되는 보아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된다. 사건을 겪은지 20년이 지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은 2년 동안 매일 밤 26마리의 사나운 개가 나타나는 꿈이었다. 보아즈는 어느 마을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도망갈까봐 개를 쏘아죽이게 된다. 딱 26마리. 꿈 이야기에 이어 레바논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밀을 밝혀 낼수록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책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주어 함께 실감하도록 도와준다. 톡 쏘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그림체는 책에 집중하게 했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때로는 말로 지시만 내리는 사람들은 전쟁 속의 일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게임하듯 장기 두듯이 이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테니까. 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당하는 사람이나 상처 입지 않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책임 회피용 에니메이션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에니를 만든 사람이 국가적 임무를 띄고 이 에니를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개인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이런식으로라도 밝히고, 작전에 투입된 개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더러운 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서 같은 남쪽 땅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내 머리속이 전쟁판이다. 전쟁. 정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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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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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화책 및 문학전집 이후에 최초로 접한 어른 소설이 이외수 선생님의 개미귀신 이었다. 언니의 책장에서 1987년 5월 초판 [개미귀신]을 발견한 이후로,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기회 있을 때 마다 구입했었다. 처음으로 생긴 취향과 구매욕구는 생각보다 강렬했지만, 선생님의 소설 이외에 다른 것에는 눈돌리기가 힘들었다. 어찌나 뜬 구름 잡으시는지.. 그 후로도 여러 책이 나올때 마다 구입했으나, 초창기 소설이라는 "훈장"과 "견습 어린이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할인의 기회와 함께. 

나는 [훈장]이 훈장선생님의 그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읽다보니 아버지가 받은 章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미친개와 아들 미친강아지의 이야기. 인상깊었지만 속상했고 마지막 장면의 나름대로의 아들이 연출한 화해를 만나니 마음이 쓰렸다. [견습어린이들]은 35년만에 최초공개라고 했다. 그래서 받자마자 냉큼읽었는데, 오! 맙소사. 어린이가 그 어린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이야기는 내가 첫번째로 갖고 있던 책에 있던 단편들이었다. 그 하나는 [꽃과 사냥꾼]으로 내가 아는 러브스토리 중 꽤 충격적이었던 러브스토리 였고, [개미귀신]도 그에 못지 않는 러브스토리였다. 오랜만에 이외수 선생님의 오래된 단편들을 읽으며, 마음이 묘하게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요즘 이분의 글은 너무 변하셨다. 우결에도 출연하시는거 같던데. 흠흠. 

책은 손에 잘 들어오는 크기의 양장으로 책갈피끈이 곱게 붙어 있다. 평범한 양장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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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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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어떤 남자가 1년 후, 주인공이 그녀를 만나면 그때부터 주인공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하는 것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한 여자가 계획적으로 한 남자를 선택한다. 함께 도피할 남자친구 대신 희생량이 되어줄 그 남자는 알고보니 부랑자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돌아온 남자였다. 그 남자는 결국 희생량이 되어 죽는다. 주인공 이안. 시작부터 죽어린다.

그렇게 죽어버린 주인공 이안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품고 태어났다. 아버지와 누나 사이에서 태어나고, 그 덕분에 엄마가 증오하는 대상이 되고, 냉담한 아버지에겐 버려졌다. 누나이면서 엄마인 누나가 이안을 구해내지만 이안의 불행은 끝이 나질 않는다. 이안이 만나고자 했던 누군가가 이안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해주려나? 길지 않은 만화 속에 많지도 않은 그림과 많지도 않은 글자가 있는데도 이야기는 너무 많다. 누군가를 선택해, 그 누군가를 만나고 그 까닭에 마음이 다치거나 죽게되는 일들이 횡하면서도 깔끔한 그림체로 책 전면에 펼쳐진다.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만, 결국에 돌아오는 부메랑에 머리를 맞아죽는 느낌이랄까? 누구나 갖고 있는 공허와 상실의 극대화랄까? 가족의 불행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을까? 

아주 인상깊은 만화를 만났지만, 작가의 만화가 계속 이런식이라면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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