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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로드 -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이욱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는 두부공장과 국수공장으로 심부름을 가곤 했었다. 두부는 집에서 만들기도 했었던 것이니까 낯설지 않았지만, 국수 공장에 널려있는 소면 커튼은 내 눈에 너무 색달랐고 아름다웠다. 아이들이 들어가서 망칠까봐 함부로 근처에 가지도 못하게하는 소면 커튼을 먼발치에서 보며, 흰색도 참 여러가지가 있구나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부터 국수를 좋아했다. 멸치 국물에 따뜻하게 말아먹어도 좋고, 고추장 양념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비벼 먹어도 맛있고, 여주에 살때 '500냥'이라는 분식집에서 팔았던 콩나물이 면 만큼 들어있던 쫄면도 좋아했었다. 고기 먹은 후에 시원하게 말아 먹거나 매콤하게 비벼먹으며 맛들였던 냉면의 맛은 서울 와서 냉면 전문점을 발견 후, 냉면만 즐길 때 더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의 영향과 반죽하기 귀찮다는 엄마의 핑계로 자주 먹을 수 없었던 칼국수도 어찌나 맛있었는지. 그리고 서울 올라와서 맛보게된 우동이나 소바, 파스타, 몇년 전에 유행처럼 퍼졌던 쌀국수 같은 외국 국수들은 얼마나 내 입을 당겼던가!
국수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씹지 않고 후루룩 삼켜 버리는 그 국수가 신경성 위장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위험한 음식이라 조금은 멀리했으나, 그 부드러운 식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나에게 [누들 로드]라는 다큐멘터리(이하 '다큐')가 눈에 들왔다.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책도 나왔다니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다큐를 좋아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다. 진행자가 외국인이어서 외국 다큐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나서야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다큐라는 걸 알았다. 독특하고 재미난 영상과 구성은 보는 내내 화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다큐였는데, 이 책은 다큐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들에 관해 엮은 책이다. 다큐를 보며 궁금했던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도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최초의 국수를 찾고 그 국수의 이동을 따라가고 추적하고 질문하고 다음 이야기에 그 질문이 연결되는 구조는 책을 술술 잘도 읽게 했다. 사진이 많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아, 말로만 설명된 것들은 다큐를 전부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 좀 갑갑하기는 했다. 하루에 한편씩 보려고 예정 중이니 책과 영상을 짜 맞추어 볼까 싶다.
무슨 일인들 쉽겠냐만은, 다큐를 만드는 일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어려워보인다. 2년여의 기간 동안 만들어낸 이 작업들을 이야기로 묶어 아름답게 편집하고 완성된 작품을 보며, 편안하게 누워 국수의 여행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