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수필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읽은 후에 한참 동안 리뷰를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벽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글 쓴 이의 감정과 교류하는 일에 약간의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글에서 받을 수 있는 감동의 크기는 다르니, 내 마음의 벽은 글을 읽는데 큰 장벽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다. 꼭 두 달만에 다시 읽고나니 마음이 한걸음 물러난 것인지 벽이 조금은 허물어진 것인지 읽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특히나 '검려지기'를 읽고 난 느낌은 뒷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아마 나란 사람이 처음 대할 때 인상이 험하고 사귀기 어렵고 심사도 고양한 듯하다가 실상 알고 보면 하질것 없는 못난이요 바본데 공연히 속았구나, 나와 만나고 사귀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되나보다.'와 그 이후로 이어진 이야기가 너무 와 닿아 나 자신에게 코웃음 지었다. 도대체 두달 전의 나는 뭐였던건가? 두꺼비 연적을 사고 살피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하는 열정과 8년 된 조끼에서 보여지는 무심함과 동해로 가던 길에서 보여지는 그 설렘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단단했던 것일까? 아주 짧은 글들로 잔잔하게 보여지는 저자의 수필들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뒤로 갈수록 미술을 모르는 내가 읽기에는 좀 벅찼고 요즘 쓰지 않는 단어나 한자어는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줬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잔잔하고 아름다운 글이었다.

험한 세상을 살며 결국에 월북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 평온한 세상에서 내가 무언가를 가꾸면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왕자에게 선물 받고 교과서 읽듯이 읽었다. 그리고 세명의 블로그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 책의 빛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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