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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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에게서 한마디 인사가 날아왔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정말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P198)

영화를 보고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영화의 부분부분들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더 잊기 전에 읽어야지 싶어서 집어 들었다. 나는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과 그 우직함이 삶의 기준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기에 저 한 문장의 글을 쓰기 위한 한나의 노력에 눈물이 왈칵 났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터진 눈물은 멈추지를 않았다.

이 상황이 사랑인가? 스무살이나 어린 남자 아이에게 한나는 사랑을 느꼈던 것일까? 미하엘의 마음은 들여다 볼 수 있지만, 한나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도 한나만이 보였었다. 책이 미하엘 베르크의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만이 읽혔다. 문맹을 수치심으로 알고 숨기며 살아가야했던 한나를 덮친 역사의 큰 파도를 한나가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마음 기댈 곳이 없을 때 나타난 어린 미하엘은 탈출구였을까? 그리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감옥에서 듣게 된 미하엘의 육성은 빛이었을 것이다. 그 빛을 따라 세상에 나가고 싶었을까?  그 빛이 자신의 잘못을 물었을 때 한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미하엘이 삶의 아픔과 불면을 책을 소리내 읽으면서 치유하며, 한나를 떠올렸고 그 책읽는 소리를 녹음하여 안나에게 보냈다. 둘 모두를 위한 치유였으려나? 책을 보고 영화가 책을 얼마나 성실하게 표현했나 생각했다.

책은 한손으로 들고 읽기 좋을만한 무게로 가벼웠다. 잘 읽히는 문장이기도 했지만, 넓은 줄간격 덕분에 더욱 잘 읽혔다.

P.119
"당신은 당신이 수감자들을 죽음 속으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아뇨,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왔고, 이전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자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당신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은 후송돼서 죽어야 해'라고 말했나요?"
한나는 재판장의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저는...... 제 말은...... 하지만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P.145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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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지음 / 바다그림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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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전 3권) ★★★★★ (2010.05.01)


재산은 있으나 벼슬길에 제대로 나서지 못한 아버지가 소일거리로 기생집에 출입하다가 낳은 아이가 견주다. 나이많은 기생이었던 어미는 견주를 낳다 죽고 아버지가 거두어 기르나, 이름까지 견자로 바꿔 부를만큼 동네에서 개자식 취급을 받는다. 공부를 하면 뭐하나 쓸데가 없는데, 그저 동네 망나니로 살다보니, 무슨 사건만 터져도 견주에게 덮어 씌우면 그만인 상황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고 고문 끝에 반죽음을 당하지만, 평소에 한 짓이 있으나 크게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는게 견주의 상황이다. 그런 견주가 황처사의 치료로 살아나, 황처사의 칼구경을 한번에 황처사를 따라나선다. 어설프게 뒤따르는 자객을 무찌르는 황처사의 칼솜씨까지 본 견주는 무릎을 꿇는다. 가희를 만나 남자로 태어나고 그때부터 요살을 떨며 따라다니는 기와조각이 이몽학을 만나 깨어지고 만다. 견주가 지 맘대로 라이벌을 정하는 그 순간은 멋졌다.

황처사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에서 태어났건만 장님이라 아홉살까지 독 안에 갇혀 살았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칼 뒤에 자신을 숨겼다. 견주처럼 천첩의 자식인 이몽학은 다른 세상을 꿈꾼다. 아무것도 모르던 견주가  황처사를 따라 나선 후, 여러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헤어지며 성장해가는 모습과 그 만남이 견주에게 남겨 놓은 것들이 보여 다시 보니 더 좋았다. 나도 사람들을 만나서 성장하고 있으려나? 제대로 '한계"를 만나고 있나?

책의 상태는 탄탄하고, 작가의 그림은 아름답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영화를 본 후에 다시 본 만화라 그런지, 만화가 얼마나 탄탄했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만화는 소장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전 3권) ★★★★☆ (2007.08.05)

이 만화를 휴가 시작하는 첫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별 생각도 없었으면서 쫓기듯이 샀다.  Yes24 블로거 중에 이 만화의 제목을 이름으로 쓰는 분이 있어 이 만화를 장바구니에 담아놨었다.  제목이 낯익다는게 별 고민없이 대뜸 산 이유일까?  휴가 다녀와서 배달된 만화책을 보며, 나의 충동구매를 탓했다.  왜 샀을 까를 몇번이고 자문했으나 다른 이유는 더 없었다.  다 읽고 난 지금, 책 산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만화 참으로 담담했다.  주인공들의 인생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겠으나 참으로 담담했다.  그리고 간결한 그림체에서 나타나는 강한 여운과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소품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특히나 가희와의 하룻밤 이후 쫒아다니는 기와가 이몽학을 만난 이후에 깨지는 부분에서는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장님이라 아홉살까지 독 안에서 갇혀살았던 장님 황정학과 천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견주의 동행으로 시작되는 이 만화는 견주의 성장만화다.  개인사와 조선의 시대상을 한꺼번의 훑고 지나가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견주가 지 멋대로 지정한 라이벌 이몽학과의 다른 길의 선택도 매력있다.  즉흥적으로 산 책이지만 좋은 책을 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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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고기
다니엘 월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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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에 팀버든의 [빅 피쉬]를 봤다. 그리고 6년이 다 되도록 원서가 있는 줄도 모르다가 친구블로그에서 발견하고 특별한 할인행사가 있어 냉금 사서 읽었다. 만약 두껍고 복잡한 책이라면 주저했겠지만 요즘처럼 얇은 책에 마음이 가는 때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차고 넘치는 과장이 섞여있을 그의 이야기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에쉴랜드를 떠나다」였다.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워드가 에쉴랜드 밖으로 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중간계의 환타지는 '모든 것이 있지만 중요한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도전하고 싶어 떠나지만 남겨진 마음과 확신 없는 발걸음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곳.

"정상적인 사람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온갖 계획 말이야.
이 비와 이 축축함. 이것은 일종의 찌꺼기지. 꿈의 찌꺼기 말일세.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꿈 말이야.
나의 꿈과 그의 꿈과 그리고 자네의 꿈."

그 둥둥 떠다니는 꿈들이 습습하게 가라앉은 마을의 사람들은 에드워드의 발목도 잡는다. 스스로 떠나지 못한 곳에 다른 이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염려와 걱정을 넘어선 시기심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부정적인 충고가 와 닿았다. 개에게 손가락을 빼앗기지 않고 무사히 에쉴랜드를 떠난 애드워드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윌리엄의 아버지 애드워드는 결국 큰 물고기가 되어 떠난다. 떠남도 화려하다. 부모님의 병수발로 겨울 한계절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부모님을 떠나보낼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혈압에 술, 담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윌리엄 처럼 아버지를 멋지게 떠나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한번도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아버지다. 아버지의 환갑에 제주도로 일주일간 여행 떠나 그제서야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느껴졌던 아버지. 하지만 여행갔다 돌아왔을 때 잠깐 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 속의 이야기를 밖으로 내 놓지 못한 아버지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두번의 월남 파병과 그때 생긴 다리의 관통상, 농기계 장사를 할때 잘려나간 가운데 손가락과 큰 사고로 잘려나간 발가락 두개. 아버지의 신체적인 상처만으로도 많은 충격과 이야기가 있을텐데. 아버지는 언제나 조용하다.

책을 덮으며, 팀버튼의 [빅 피쉬]를 떠올려 봤으나, 몇장면 밖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원작보다 훨씬 환타지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영화를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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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에 미치다 - 150년 전의 천재와 사랑에 빠진 빈섬의 황홀한 지적 탐험
이상국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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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와 있는 박제가 된 추사만 봐 왔으니 문인화의 정수라는 <세한도>를 보고도, 그림 하나를 길게도 풀이해 놓은 책 [세한도]를 읽고도 덤덤하니 큰 감동이 없었다. 여전히 추사는 유리벽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 읽고 있자니 추사가 책 속에서 걸어나와 방바닥에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닷없는 친근함은 추사의 인간적인 풍모가 드러나는 편지글들 때문이었다. 추사의 초의에 대한 찡얼거림과 잘난척을 읽다보니 괜히 입끝에 웃음이 매달린다. 그래, 아무리 후대에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추사도 밥먹고 화장실 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도 인간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섭섭한 것도 있고 아프고 슬픈 것도 있는 것인데, 사람을 그림에 가두고 글에 가두어 놓고 <세한도>에서 뭐가 안보인다고 탓하고 있었던 것이 미안해졌다.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고 덧붙여 이상적에 대한 큰 고마움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마음에 꽃바람이 불었다가 부인에게 들켜, 놀라서 성급하게 보냈던 편지글과 제주 사람들이 수선화를 함부로 호미로 켄다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읽으면서 추사에게서 사람냄새가 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세한도>와 추사의 글씨에 대한 매력은 크게 느끼고 있지를 못하다. 문인화의 매력을 알기에는 내가 문인이 아니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시원한 듯 하면서도 거칠고, 너무 거칠다 싶을 때 귀엽게 보이는 암호 같은 추사체는 내가 한자를 모르기에 더욱 가까이 할 수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역사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는 조금 벅찬 책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책을 덮으며, 전 아무 생각없이 방문했던 제주의 "추사거적지"를 다시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추사고택도 언젠가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상태는 지루하지 않은 편집과 길지 않은 글들로 잘 읽히는 책이었다. 모든 책의 이해는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닌가라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p.142
초의에게 보낸 추사의 편지들을 읽다보니, 추사의 걸명은 애원을 넘어 협박 수준으로까지 변한 걸 보고 웃음이 났다. 추사는 정말 집요하게 차를 요구했다. 이상적에게 책을 요구할 때도 그랬지만 그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에 미안해하거나 쑥스러워하지 않는다. 귀하게 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는 쪽보다는 이쪽의 다급함과 절심함을 홍보하는 일에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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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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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글읽기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는 그림이 점점 늘어난다. 저자가 사랑하는 그림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읽게되는 까닭이다. <송하맹호도>와 <마상청앵도> 그리고 <이채 초상>은 아는 그림이라 반갑고, 매직 아이처럼 벌떡 일어나는 듯 보였던 <금강전도>는 반가웠으나 『주역』 속을 헤매다 읽기에 대한 흥미를 약간 잃어버렸다.

언젠가 TV에서 어떤 할머니댁을 방문했었는데, 할머니께서 시집 올 때 갖고 왔다는 문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았다. 별 흥미가 없어 다른 것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려는데 문갑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것은 할머니의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전하는 글이었다. 문갑 안쪽에 빽빽하게도 적혀 있는 글들은 멀리 떠나보내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이 묻어나는 가르침들이 적혀 있었다. 그냥 편지로 준 것이 아니라, 딸이 갖고 갈 문갑에 붙여두어 열고 닫을 때마다 볼 수 있게 한 아버지의 다정함이 마음에 박혔다. 그 문갑을 보고 그 할머니 얼굴을 다시 보니, 그저그래보였던 시골 할머니 얼굴에서 빛이 나 귀인처럼 보였다. 그런 기억을 갖고 정약용의 <매화쌍조도>를 보는 마음은 남달랐다. 그림은 다시 봐도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아버지께 정스러운 그림까지는 아니어도 정이 묻어 나는 글이라도 한번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바랄 것을 바래야겠지만. ㅡㅡ;). 이런게 문인화의 매력이라는 것일까?

그리고, 드디어 난초 그림을 만났다. 미술 시간에 그리라 했던 난초 그림은 간단한 선을 몇가닥 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절망감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옛그림하면 생각나던 난초와 대나무 그림 중에 저자의 책에서 보기 어려웠던 난초 그림을 보게되니 반가우면서 괜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노근묵란도>는 뿌리가 밖에까지 나와 있는 것이 거칠거칠해 보이며 꽉꽉 들어찬 화면에 약간 누울 듯한 난을 보고 있자니 힘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과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저자의 설명을 읽고 <노엽풍지도>의 우아한 선을 보고나니 마음이 쓸쓸했다. 사라지지 않는 과거이고 잘못 알고서 되풀이하는 많은 것들이 쓰리다. 많이 살피고 알아야 할 일이다 싶다.

57쪽에서 58쪽을 넘어가면서 읽고 있는데 연결이 안된다. 그때 왼쪽 옆에 자그마한 글씨로 "앞 문단과 이 문단 사이에서 구나 절, 또는 문장이 빠진 듯하다.-편집자"라고 씌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가 쓰긴 썼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한 책이라 그런가? 아니면 그런 편견을 갖고 보아서 그런 것일까? 책 전체가 약간은 거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빈자리가 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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