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창훈 저| 문학동네| 368쪽| 597g| 140*210mm| 2010년09월03일| 정가:13,800원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소설가가 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한 생각이지만, '괜히 겉멋들어 바닷가 가서 낚시대나 드리웠나'라는 생각을 하며 크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책이었다. 책의 인식을 바꿔놓은 것은 오른쪽에 올려놓은 이 사진 한장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반백의 머리카락과 바닥에 도마를 놓고 앉아 생선을 다루는 이 사진 한장을 접하고 난 후, 이 책을 안 살 수가 없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하고 입을 벌리고 싶어졌다. 그러고 있으면, 뭐 이런 뻔뻔한게 다 있나 싶은 표정으로 잠깐 보시다가 한점 기분 좋게 입에 넣어주실 것 같다.
그 정도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책은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군침이 흐르다 못해, 나중에는 갈증까지 일며, 인생이 마구 허기진 느낌이 난다. "바다로 가라"라는 말에 "네"하며 달려나가고 싶어진다. 안되면 횟집으로라도 뛰어 나가야 할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다행히도 이 책을 읽은 장소가 일본 여행가는 길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서해안 어디 즈음에 있다는 지인의 친척의 배를 수배하여 함께 갈 사람들을 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여주와 강원도 철원이라는 쌀 좋은 곳에서 자라 어렸을때 접한 생선이라고는 생선가게에서 보는 염장된 것들 뿐이었는데도, 이 비린 바다 것들에게는 마음이 한없이 빼앗긴다. 어렸을 때 내륙에 살아 비린 맛을 못본 사람들은 먹기를 꺼려하는 것들도 내 입에선 달고 맛나기만 하다. 갈치, 삼치, 모자반, 숭어, 문어, 고등어, 군소, 볼락, 홍합, 노래미, 병어, 날치, 김, 농어, 붕장어, 고둥, 골뱅이, 거북손, 참돔, 소라, 돌돔, 학꽁치, 꽁치, 감성돔, 성게, 우럭, 검복, 톳, 가자미, 해삼. 그 이름만 불러보아도 참으로 다정한 이름들 아닌가.
책은 참 훌륭하다. 사진도 훌륭하고 글도 훌륭하고 그 사이사이 사람 이야기도 훌륭하다. 삶이 삶이기 때문에 삶을 쓴 글도 삶 같아서 참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이로 무언가를 잡아 죽이지 않아 좋았다. 거문도를 여행 리스트에 올려보며 언젠가 나도 낚시로 배 채워보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