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손이 떨려 옷이 찢어지지 않았다. 박태보가 "칼로 실밥을 찢어서 싸매면 쉽소" 하면서 이리저리 하라고 지휘해서 마침내 무릎을 다 쌌다.
그러고는 소매 속에 있던 부채를 꺼내면서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될 테니 집에 전해주오"라고 했다. 박태보에게 칼과 차꼬를 씌워서 들것에태우고 창과 조총을 가진 군졸들이 옹위하여 의금부로 데리고 갔다. 종질 박필순이 군사 틈으로 들어와 홑이불을 헤치고 손을 잡으며 "착하실사, 우리 숙부여. 죽기에 임하여도 마음 변치 않으시니, 군자로다.
전후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오니 마음을 단단히 잡으소서"라고 했다.
박태보가 "내 마음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박태보의 아버지 박세당이 소식을 접하고 급히 양주 수락산 석천동에서 달려왔지만 서로 만나보지 못했다. 의금부 앞 원두막에서 기다리다가 아들의 상태가 어떤지 알려고 사람을 시켜서 "네 글씨를 보면 네얼굴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한 자만 써서 보내라고 하니 아들은"저를 역률로 다스린다 하오니 부자간이라도 문자를 서로 통하는 것은미안한 일이므로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날도 국문을 하려 했지만 영의정 권대운이 "박태보 등의 죄는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사오나 누차 중한 형신을 받아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더 형신을 가하면 끝내 장하에 죽게 될 것이니, 전날에 국맥(國脈)을 손상시키게 될까 염려스럽다고 한 전교에 어긋나는 처사가아니겠습니까?" 하고 용서를 비는 차자를 올렸다. 이에 임금이 답을내렸다.
"박태보 등이 범한 죄는 흉역에 관계되지만, 이미 ‘이 뒤로는 역률로집필자는 나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