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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평점 :
*컬처블름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동안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몇 가지 읽을 때마다 책의 날개 부분의 이력을 보면 1988년 아들을 잃었다는 기록이 있어 본 적이 있었다. 자식을 잃어 어떻게 살으셨을까 생각을 잠시나마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을 쓴 일기가 있다니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글을 쓴 것이라고. 읽어보고 싶었다. 자식 잃은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는 게 사는 것일까? 그 마음을 내가 당해보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싶다.
<한 말씀만 하소서> 이 책은 20주년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되었고, 겉 표지의 <한 말씀만 하소서> 글자체는 박완서 선생님의 육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릴 기대가 만발한 날들에 아들이 죽었는데도 멀쩡히 돌아가는 세상에 화가 끓어오름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88올림픽이 열리는 건 참을 수 없다며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고 싶다는 미친년 같은 생각과 몸은 몸대로 지쳤지만 자식을 앞세우고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어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 토할 것 같다는 표현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읽으면서도 그 아픔과 원망의 표현들이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신을 사생결단 죽이고 또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라는 표현에 분노가 있고, 포악으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절망과 대면하고, 죽음과 대면하고, 신과 대면하고, 자신의 고통스러움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단어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참척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참척(慘慽)은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걸 말한다. 지접(止接)은 잠시 몸을 의지해 맡기고 거주한다는 뜻이다. 묵계(默契)는 말없이 서로 뜻이 맞거나 그렇게 성립된 약속이란 뜻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부산의 큰 딸 집에서 머물다 홀로 설 결심으로 분도 수녀원으로 들어가 분도 수녀원의 일기를 보니 그곳 생활도 참 좋았다. 그것에서 생활하면서 어린 수녀님으로부터 사고의 대전환을 알게 된다. '돌아누움, 뒤집어 생각하기, 사고의 전환' 이런 생각으로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그리고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 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게 진정한 홀로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