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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ㅣ 거장이 만난 거장 6
엑토르 베를리오즈 지음, 이충훈 옮김 / 포노(PHONO) / 2020년 9월
평점 :
작년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베토벤 관련 책들도 많이 나와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읽지 못했습니다. 2020년은 지났지만, 몇 주년 기념이 지났다고 베토벤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읽고 싶을 때 읽을 생각입니다.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 여섯 번째.
베토벤과 아홉교향곡입니다.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인 베를리오즈는 아버지가 아들을 의사로 키우려고 했지마 결국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일찍이 베토벤을 알아보고 파리 음악원 시절 작곡가의 후기 현악사중주를 연구하고 베토벤을 받아들이기 꺼려하던 프랑스 비평계에 반발, 직접 평론 활동에 뛰어들어 여러 매체에 이 작곡가에 대한 호평과 찬사의 기사들을 기고합니다.
'음악', '베토벤 교향곡', '삼중주와 소나타' 세 편의 글은 베르르리오즈가 1844년에 출판한 독일과 이탈리아 음악 여행: 베토벤, 글루크, 베버 연구에 먼저 실렸다가 나중에 노래를 가로질러에 재수록했다고 합니다.
아홉 개의 교향곡은 이해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악보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악장 이름, 형태 등 방법들을 알 수 있고, 1번 교향곡과 2번 교향곡의 다른 점 들, 베토벤은 불멸의 영광, 사랑, 헌신 등 즐거움에 빠져있는 표현들을 알 수 있습니다.
합창 교향곡 연주를 들었던 베를리오즈는 훌륭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멍청한 곡이라고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문사에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기괴하기가 이를 데 없다.'라고 평했나 하면, 다른 신문사는'배치가 엉터리로 되어 일관성이 없고 매력도 보이지 않는다.' 또다른 신문사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는 대단한 대목이 많다. ....... 요컨대 이는 힘 빠진 천재가 쓴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라 하겠다.'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베를리오즈는 미래의 가장 위대한 시인조차 베토벤과는 대적할 수 없다고, 정말 엄청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음계의 똑같은 도(度)로, 똑같이 진행되고,
똑같은 힘으로 울리지만,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같은 음표 사이에서라도 대단히 큰 차이가 나타난다.
이들 음표를 구분해주는 차이는
'청색'과 '보라색'을 구분하는 차이와 비교할 수 있을텐데,
베토벤 이전에는 그렇게 섬세한 조성의 차이를
전혀 표현할 줄 몰랐다. 우리는 베토벤 덕분에
그런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이다.
즉흥 연주를 한다고 자부하는 피아니스트는 많다.
그들은 다들 알고 있는 주제 일부를 모든 조성으로 끌고 다니면서
자기가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개 그저 그 주제를 끔찍하게 뒤섞고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실제로 완전히 새로운 음악,
숭곡한 음악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그의 즉흥 연주를 들었던 사람이라면
기회가 될 때마다 베토벤이 해냈던 저 경이로운 연주를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 폭발하는 화산 같은 천재가 분출하여
수많은 뜨거운 관념, 미지의 효과, 종이 위에 써진 것을 봤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 음들의 결합을
맹렬하게 쏘아대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으로 베토벤의 천재성은 언제가는 두각될 터였지만, 베를리오즈에 의해 베토벤의 음악의 가치를 더 인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쓴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을 읽어서 베토벤의 '처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