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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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겨울이 지나간 세계》입니다.

아사다 지로는 1951년 도쿄의 큰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아홉살 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쓰라린 경험을 하고, 자위대 입대, 패션 부티크 경영을 하다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철도원》에 실린 단편 ,러브레터.는 우리나라에서 2001년에 <파이란>으로 영화하기도 했죠.

《철도원》 외에 《지하철》, 《장미 도둑》, 《파리로 가다》 등 많은 책이 있는데, 저는 아사다 지로의 책은 《겨울이 지나간 세계》를 처음 읽었네요.


입사 동기들 중 사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홋타 노리오.

이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 홋타 노리오의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전개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반대까지는 아니지만 정년 퇴직 송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지하철에서 쓰러지는 65세 다케와키 마사카즈가 주인공이다.


다케와키 마사카즈는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아로 시설에서 자랐고, 신문 배달이며 입주 배달로 일하고, 대학에 합격하여 살아온 자신의 과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부인 세스짱에게도 결혼하기 전 보여준 호적등본 텅 빈 거에 대하여 말하지 않지만, 부인 또한 캐묻지 않아도 마음 속으론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의식을 잃고 사흘 동안 누워 있는 다케와키에게 '마담 네즈'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찾아오는 여인에게 끌려 병원 밖으로 나가 꿈도 실제도 아닌 여행을 하듯 마담 네즈와 저녁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케와키는 자신이 집중치료실 침대에서 선잠을 자고 있지만 마담 네즈와 저녁을 먹을 때 행복함을 느끼고, 고통도 괴로움도 두려움이 없어 편안한 마음을 느낀다.


"직장의 정년퇴직이 인생의 정년퇴직이란 건 너무 슬프지 않나요? 분명히 제게서 일을 빼면 아무런 장점도 없습니다. 이렇다 할만한 취미도 없고,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지요. 그런 인간은 이미 존재 가치가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적당히 일하면서 노후를 위해 취미나 꿈을 남겨 둘 걸 그랬군요. 하지만 제게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간 세계 p93


"당신은 참 열심히 살았어요."

겨울이 지나간 세계 p101


다케와키는 그동안 자신이 행복함을 몰랐고, 편안한 마음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우리 아버지 세대에도 그러지 않았을까 한다.

처자식을 어떻게든 굶기지 않고 벌어 먹여야 했던 때에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만난 시즈카와의 만남에서 알 수 없는 데자부에 시달린다.

"좀 더 생각해 보세요."

"누구를 위해서요?"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요? 괜히 위하는 척하지 마세요. 생판 남인 주제에 뭘 안다고."

나는 천박하게 말했다.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잊으면 가엾잖아요."

"잊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일은 이 세상에 산더미처럼 많아요. 그 나이 정도면 알 것도 같은데요."

겨울이 지나간 세계 p129


자신의 과거를 보고, 가족과 함께 여행했던 일들을 기억하며 아들 하루야가 4살 때 죽었을 때 아들의 죽음을 서로의 탓으로 비난했던 일들을 기억한다.


옆 침대에 누워 있는 80세의 사카키바라 가쓰오.

가짱이라 불리는 이 할아버지는 일주일째 누워 있다.

우산 도둑, 신박 도둑, 우두머리인 '미네코'와 함께 목욕탕 탈의실 도둑질을 했다는 가쓰오의 말을 드르며 다케와키도 시설에 있을 때 목욕탕에 갔던 일을 떠올리기도 한다. 목욕탕에서 나와 포장마차에서 가짱은 다케와키와 정종을 마시며 다케와키에게 훌륭하게 살았다며 칭찬을 받는다. 가짱 세대엔 모두가 배고픈 시대에 살았지만, 다케와키는 그렇지 않아 불행했을거라고 위로하지만 다케와키는 복지가 좋아졌고 환경이 좋아져 기회를 얻은 거라고 말한다. 다케와키는 부모도 친척이 없어 덕분에 '고생의 절반'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죽음을 떠올리며 인정하지 않았던 자신의 불행에 대해 생각한다.


문득 65년의 인생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케와키와 시간을 보내고 온 가짱은 결국 저세상으로 떠나며 다케와키는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가짱은 과거를 잊었지만 내게는 과거가 없다. 가령 부모가 데리러 온다고 해도 나는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부모를 알게 되면 평온하게 있을 수 없으리라. 아마 지하철 차량 안이든 역의 플랫폼이든 상관없이 큰 소리로 욕을 퍼부으며, 아무리 사죄해도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간 세계 p259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 같다.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나를 버리고 간 내 입장에서 부모에게 따뜻하게 할 수 없음은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병실로 돌오온 다케와키에게 부인 세쓰코는 "여보, 이제 돌아와 줘요.", "맛있는 걸 먹으러 데려가 줘요. 아름다운 경치도 보여줘요. 나 혼자선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어디에도 갈 수 없어요." 라고 말한다. (372)

다케와키는 다시 환상 속으로 날아가 노란색 지하철 플랫폼에서 이제 죽는 것인지?초콜릿색 지붕 끝에 둥글고 커다란 헤드라이트가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데 이번에는 누구를 만날까 기대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상처로 인해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상처를 감춘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상처로 원망하는 마음이 컸지만, 이런 원망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영원히 행복하리란 법도 없고, 영원히 불행한 것도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오듯 그 남은 시간까지 희망의 삶을 살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아사다 지로는 이 소설을 통해 누구마다 가지고 있는 고통과 상처를 감내하며, 남에게 좀 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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