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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게 하는 몇몇의 작가가 있다. 그야말로 밑줄 긋는 여자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나와 궁합이 잘 맞아떨어지는 프랑스 문학을 읽다보면 더더욱 손에 잡히는 연필에 바짝 긴장감 까지 서려있다.
노통의 소설은 이번 적의 화장법이 처음이다. 그녀의 천재적인 평판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고, 그에 비해 이번 독서는 꽤나 늦은 감이 느껴진다. 어쨌든... 노통은 보통이 넘는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설가로써의 자질이 거의 천재적이다.
적의 화장법!!
처음 읽는 순간부터가 기가 막히다 못해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냐~~~?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었다. 주인공 앙귀스트의 심정을 백번 이해하면서 그가 내뱉는 대사들을 똑같이 내뱉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뜬금없이 옆자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비아냥의 진수 대화법으로 슬금슬금 인간의 악질적인 본성을 간지럽히는 인간! 그의 이름은 =텍스토르........
꽤나 지적인 방법으로 한 인간의 심리를 우왕좌왕 열받게 하면서도 결코 자신은 흥분하지 않는점. 그저 유유자적 한 인간이 열받아 하는 과정을 보며 내심 통쾌해 하는 그야말로 변태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변태같은 인간이 하는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의 집요하리만큼 철저한 붙임성(?) 이 독서를 더욱더 빠른 속도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는것이 아이러니다.
아마도 앙귀스트와 나는 완전히 동일한 인간이 되어 점점 세상의 예의와는 담을 쌓아버린 이 악마같은 존재에게 최면되어 버렸나보다. 갈수록 책을 읽는 나의 속도는 거의 수준급의 달리기 선수로 변해있고,, 이 두 인간의 기가막힌 말싸움은 울렁울렁 내 심장을 두 방망이질!! 읽다보면 구렁이 담넘어가듯 어느새 상황은 반전에 반전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어 가고,, 우리의 말초신경을 충분히 자극하는 강간과, 살인이 마우렇지도 않게 떡 전개되어있다. 나도 모르게 속이 타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결말로 갈 수록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 하다. 눈치가 빠르거나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강 마지막 결론의 반전이 때려 짐작되겠지만, 나와같이 어리버리한 인간들은 사실 대단했다. 한마디로 막판 충격이다.
경찰을 불러 이 사람 잡아가 달라고 소리쳐 불러 세웠을때 앙귀스트는 미친사람 취급을 받았다. 일찌기 그 부분에서 나는 감을 잡았어야 했었던 것인데,,, 아뿔사.... 다 읽고 나니 뒤통수가 얼얼한듯 그 순간의 영민하지 못한 나의 두뇌가 후회로 남는다.
우쨌든........ 악의 존재,,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적은 분명 존재한다. 라고 텍스토르는 강조하다 못해 약을 올리고 열을 치받게 하고 살의까지 조성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결말이야 읽어보면 알것이고,,,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밑줄을 그어댄것을 보면 지독하게 공감해 버린 나의 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모르겠다. 그 적을 없애기 위해 나는 힘을 주어 밑줄을 그었다. 참으로 순진한 방법이고 소극적인 방법이다.
텍스토르가 말했던 그 이유....
" 내가 적을 믿는건 밤낮 할것 없이 내 삶의 길목마다 그것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그 내부의 적은 당신 자신을 스스로 혐오하게 만듭니다. " " 적은 자신에게 죄책감을 조성합니다. 이유인즉 그가 득세하는걸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의식"
오호 통재라..... 우연히도 최근의 나의 비애와 우울함의 근원이 된 원인이 이 망할 집요한 놈의 말에서 나왔다. 내면의 우글거리는 적의 바이러스들에 나는 잠식당해 버렸었고, 아예 그것들을 제거할 용기조차 내고 있지 못했으니,,,, 나의 결말또한 앙귀스트와 같아야 한단 말인가? 무섭군.. 무서워... 나는 과연 적과의 동침을 원할것인가? 아님 죽기 살기 까무러치기로 이 놈의 적을 제거할 것 인가? 어쨌든 나는 앙귀스트 처럼 마지막 운명을 맞이하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