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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처음으로 바나나의 글을 접했던 때!
장마가 시작되려던 그 즈음 공기는 무거웠고 하늘의 구름들은 흐린 잿빛으로 부지런히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빗방울이 가깝게 보고 싶었고,,, 그날의 공기가 온통 내 속으로 흡수되길 원했던 날...
따뜻하고 부드럽게 밀크티를 만들어서 커다란 머그잔에 옮겨 담고 하늘과 조금더 가까운 옥상으로 올라가 예전 처마밑과 비슷한 공간을 찾아 콘크리트 바닥에 얇은 무릎담요를 깔았다.
어느새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이 마련되었고,,,
그곳엔 김이 모락나는 향긋한 차한잔과 얇고 낡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처녀작 '달빛 그림자' 그리고 나의 애견 비글 룰루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던 그때!
그 때의 풍경속 오감들이 아직도 선명한건 분명 바나나의 글들이 주는 감수성이 크게 한몫 했기 때문이다.
한없이 고즈넉하고 자연스러운 감정들의 나열들. 그것들이 행복감이든 불행이고 상실이든...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지 않아도 빗방울이 웅덩이에 동그라미를 그리듯 무심하게 이입되는 순간!
장소와 그곳에 함께 하는 사물과 자연현상이 그냥 한 덩어리고 일체를 이루어 버리게 되는 순간! 그때가 그리워 다시금 그녀의 책을 반복해서 본다.
불륜과 남미! 뭔가 도발적이다. 표지의 그림또한 강렬하다. 바나나의 글을 읽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이 책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자연스럽다.
남미의 풍경들. 불륜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
단지 불륜이라는 현상으로 얽힌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 미래에 대한 단상들이 그 낯설고 이국적인 공간안에서 버무려 지고 있을 뿐! 그것도 질퍽한 진흙의 느낌이 아닌 사막의 고운 모래 바람에 날리듯 살짝 그것도 아주 살짝만 등장하는 불륜!
그것은 특정한 장소(남미)에서 추억되고 현실되어지는 그저 그런 하나의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 어떤 미화도 선입견도 없이 추억이 현실이 미래의 기대가 나열된다. 그저 삶이 흘러가듯,,,행복은 그저 행복으로 쓸쓸함과 상실은 그 자체로...불륜 또한 인간 삶의 하나의 현상이고 관계이고 감정이었을 뿐! 그 어떤 한가지 사실이나 감정에 집중되지 않는것! 이것이 그녀의 매력이다.(중간에 끼여있는 일러스트 속 여자들의 눈빛: 강렬하지만 무심함..과도 연관되는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런 감수성들은 어느것 하나 특별할 것도 없고 남루하지도 않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삭막해진 감성 또한 샘물 스미듯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파고 들게 하는 힘~ 홍차에 우유가 섞이듯 그렇게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따사로운 햇살이 한움큼 드리우는 창가에서, 혹은 빗소리 선명하게 들리는 야외 테라스에서, 흰눈 소복히 쌓인 스키장을 바라보며 콘도 식탁에서든... 은근한 차 한잔과 쉬엄쉬엄 숨고르며 읽기 좋은 책!
(투박하지만 약간은 쓸쓸한 매력적인 그림도 감상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나의 로망 중 한곳인 남미의 곳곳들에서 함께 숨쉰것 같은 글과 사진들! 일석삼조 만족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