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것이 되고 싶어 - 신조 마유 단편 시리즈 1
신조 마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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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패왕 애인'을 보면서 요즘에, 그것도 여성독자를 상대로 하는 순정만화에서 이런 무지막지한 쇼비니즘, 마쵸이즘을 긍정적으로 다룬 만화가 있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당신의 것이 되고 싶어'는 '패왕 애인' 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당신의 것...'은 4 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단편들은 신조 마유 특유의 공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성적으로 미숙한 소녀가 성적경험이 많고 쿨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그의 성적 접근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곧 그가 주는 쾌감을 즐기게 되고, 그 뒤 자신이 의사에 반해서 그 남자와 헤어져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 때쯤이면 쿨한 섹시가이는 가엾은 소녀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어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는법!  그래서 다시 그에 의해 '영원히 헤어짐' 이라는 위기상황에서 구출된다.  이러한 공식에서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주인공 소녀의 의지이다.  소녀가 좋아서 주인공 남자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의지에 반해서 강제로 관계를 맺고, 헤어지게 되더라도 '이게 내 팔자인가봐' 하는 식으로 체념헤버린다.  신조 마유의 세계의 여 주인공들은 스스로 경험하고 성장한 성인여자가 아니라, 남 주인공에 의해서 성인 여자로 만들어 진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것이..."의 첫 단편에서 남 주인공 타카노가 여 주인공 아유나와의 첫 만남에서 하는 말인 "내가 여자로 만들어 주지" 는 이 만화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아주 가끔 신조 마유의 여 주인공 중에 자기 의지로 남자를 선택하는 경우도 보긴 했는데, (예를 들어 해적판으로 나왔던 "석류"에서의 여 주인공), 그런 경우에도 여 주인공들은 거의 100% 자의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인해서 남 주인공과 첫 만남/관계를 가진 다는 데서, 신조 마유의 쇼비니즘 공식은 어긋나지 않는다.  순정만화에서 까지 소년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구도를 본다는게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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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골동양과자점 4 - 완결
요시나가 후미 지음, 장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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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벌집 손자에다, 동경대 출신, 큰 키와 뛰어난 외모, 여러개의 외국어에 능통하고, 사법과 외무의 양대 고시를 가뿐히 패스한데다가 마작이나 꽃꽂이 같은 잡기에도 능한 사나이, 타치바나.  그러나 팔방미인인 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어렀을 때 당한 유괴의 충격으로 하던 일이 잠시라도 꼬이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금새 포기해버려서 무엇하나 끝까지 제대로 해낸 게 없는 것!  무수한 실연 끝에 회사를 집어치우고 시작한게 케이크 집이다.  그것도 고교시절 자신을 연모했으나 잔인하게 거절해버린 동창 오노를 제빵사로 고용해서 말이다.  타치바나에게 거절당한뒤 "마성의 게이"로 거듭나 현재는 천재적인 제빵사로 입지를 굳힌 오노.  천재 복서였으나 눈을 다쳐 실명하느냐 권투를 그만두느냐 하는 고뇌 끝에 견습 제빵사로 들어온 칸다.  타치바나와 정반대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것 밖에 없는 치카게를 웨이터로 삼아, 제과점 '앤티크' 는 매일 저녁 늦게 까지 손님을 맞는다. 

한적한 주택가에 늦은 저녁시간 까지 손님을 맞는 이유가, 결국은 강제로 빼앗긴 타치바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기 위했음이 였다는게 4 권에서 드러난다.  비록 자신의 유괴범을 잡지는 못하지만 다른 유괴 사건을 해결하는 타치바나.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 유괴 사건을 해결 했다해서 기억이 되돌아 오지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도 못한다.   현실은 언제나 그러하다.  마음의 외상은 치유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픔이 약간 둔하게 느껴 질 뿐, 자신에게 벌어진 고통스런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상처입은 영혼이 등장하는 또 다른 만화 "마르스"를 보면 여 주인공 키라가 '왜 사람들이 시간이 약이라는지 모르겠다' 라고 한다.  타치바나의 상처또한 그렇다.  시간이 흐른다고 과거가 재정립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를 거울 삼아 더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그래서 타치바나는 오노에게 사과하는 것이고, 오노는 치카게를 포기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과거에-고통의 기억에- 맞서는 것이다.  결과는 중요치 않다.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맞서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숭고한 것이다.

쓰다보니 "서양골동양과점"이 무척 어두운 만화처럼 묘사되었는데, 천만에!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의 고통과 그 기억이라는 엄청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그러나 경박하지 않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오노의 '마성의 게이' 혹은 '제과업계의 왕따' 에피소드나, 치카게가 어떻게 아빠가 되었는가를 다룬 얘기, 왕가슴 여자 아나운서의 고민, 칸다의 폭주족 시절 애인들의 삐리리 이야기등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케이크와 함께 1권 부터 4 권까지 실종일관 폭소를 자아낸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스런 분들은 "서양골동양과점"을 읽고 힘을 내시길.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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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하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미래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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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지의 그림이 책 전반을 설명해 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인 에드워드 번-존즈의 "현혹된 멀린"이 표지 그림인데, 멀린에게서 마법을 배운 비비언이 그 마법을 가지고 그를 영원히 탑에 가두어 버린다는 아서왕 이야기의 전설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비비언이 자신에게 마법을 걸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매혹당해서 계속 마법을 전수해주다가 결국 그녀의 마법에 걸려 영원히 자유를 박탈당하는 멀린.  메두사의 머리를 하고 그의 전부 (마법의 지식 + 신체의 자유)을 소유하는 비비언.  스스로의 의지로 도저히 어쩔수 없는 사랑, 매혹, 그리고 소유의 욕망을 묘사한 그림을 표지 그림으로 선택한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롤랜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를 위시한 현대의 학자들은  지식의 소유를 갈망한다.  지식욕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롤랜드와 모드는 마주치게 되고, 서서히 지식에 대한 소유욕을 넘어선 공유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인 랜돌프 애쉬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롤랜드는 우연히 발견한 애쉬의 연애편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편지의 수신인이 크리스타벨 라모트라는 애쉬와 동시대의 덜 알려진 동화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라모트의 권위자이자 후손이기도 한 모드에게 함께 연구할 것을 제의한다.  애쉬는, 브라우닝식의,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로 유명한 시인이고, 라모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레즈비언 시인으로 후세의 여성학자들의 연구대상이다. 따라서 이 두 시인의 연애는 물과 기름 처럼 서로 걷도는, 있을 수 없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애쉬와 라모트간의 숨겨진 연애 편지들은 속속 등장하고, 애쉬의 아내의 일기, 라모트의 연인의 편지등을 통해, 두 시인의격정적인 사랑의 전모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소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자그대로의 의미로서의 소유/가지다 뿐만 아니라, 영어의 possess 에는  "(악령따위에게) 홀리다, 미치다, (감정, 관념따위에) 사로잡히다, 지배당하다" 라는 뜻이 있다.  애쉬를 더 잘알고 싶다는 감정에 사로 잡힌 롤랜드는, 애쉬 개인 편지를 훔쳐내고 (또는 개인 소유물로 만들고), 그 편지들을 연구하지만, 연구하면 할 수록, 시인의 알려져 있지 않던 개인사를 더 깊이 알게 될수록,  시인의 작품과 업적 그 자체로 부터는 멀어지게 되어서, 결국은 시인의 독자로서의 롤랜드의 위치는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을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역설적으로 시인의 작품으로 부터는 멀어지게 많들다니....   앞서 말한 멀린의 아이러니가 생각난다.  너무 사랑해서 모든 것을 주지만 결국 갇혀 버림으로써 그 사랑의 대상에서 실제론 멀어져 버리는 멀린의 아이러니가.

크리스티나 로제티를 연상시키는 라모트의 시, 그리고 로버트 브라우닝을 연상시키는 애쉬.  난 빅토리아 시대의 영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이 책에 등장 하는 시들과 동화, 신화에 관한 의견들은 나 같은 문외한도 "우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런 점이라면, 작가가 미셸 푸코를 약간 비하한다는 느낌의 든것과 (나 만의 억측인가?), 강렬한 감흥을 주는 애쉬와 라모트의 사랑에 비해, 현대의 연인들-랜돌프와 모드-은 너무 딱딱하고 너무 감정을 숨긴다는 거다.  어쩌면 그건 작가가 의도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실체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소유의 역설을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말이다.  감정과 성을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일상화된 현대에 사는 연인들에 비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미덕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연인들이 더 강렬한 감정의 교분이 가능했다는 역설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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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라 BASARA 27 - 완결
타무라 유미 지음, 이은주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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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열혈소녀와 도처에 등장하는 그녀만을 사랑하고 돕는 남자들... 정말 신물 나도록 많이 보아온 도식이다. 그래도 바사라에 주저없이 별 5 개를 줄수 있는것은 작품 전체를관통하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사람 하나하나의 역활의 중요성과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사회안에서 정립하기 위해서 진실로 필요한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작가의 자세가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진지한 주제를 27 권동안이나 한번도 긴장감을 읽지 않은 데다가, 수십명이 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실감나게 그려내었고, 순정만화에서 드문 역동적 그림체로, 그야말로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최고의 만화 중 하나이다.  허락된다면 별 10 개라도 주겠다. 

마지막 타타라군과의 전투에서 슈리가 말하는 새로운 일본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비록 그 새로운 일본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야할 민중들은 사실 어리석어서 슈리같은 위대한 사람이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않된다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쯧쯧) 사라사/타타라라는 정체성의 위기는, 슈리/적왕이라는 정체성의 위기에 의해 극에 달하지만 또한 슈리/적왕에 의해서 그 위기를 극복한다. 아게하/귀접이나 아사기/창왕에서 드러난 정체성의 정립과 극복 또한 무리없이 전개되어 있다. 읽으면서 작가님이 나기의 캐릭터의 발전에 좀 더 신경을 써 줬더라면 하고 아쉬움을 느꼈는데, 일본에서만 발매된 BASARA Special Box Set에 실린 번외편 SARADA에 수수께기였던 나기의 정체가 밝혀져 있었다.  나기는 6권에서 아사기가 슈리에게 얘기해줬던, 울금왕에의해 화살을 맞고 강에 버려져 사망한것으로 추정되었던 둘째 왕자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11권 말미의 번외편 "무대 뒤 이야기"를 보면, 아사기가 '아빠도 엄마도 같은 단 하나뿐인  형제가 있다'고 아게하에게 털어 놓는 장면에서, 나기가 아사기를 부르러 오니까 아사기가 "나기는 껄끄러워"라며 사실은 무척 즐거운 얼굴을 하고 나가는데, 국왕에 생사를 모르는 아들이 있다는 부분에서 나기를 등장시켜서 나기의 출생이 암시 되어있었다 (왜 이걸 예전에는 예사롭게 넘어 갔을까?).  뿐만 아니라 23 권의 번외편 "잠 못 드는 밤"에서도 사라사가 파초선생에게 나기를 어떻게 만났는지를 묻자, 파초선생은 나기가 상처를 입고 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얘기함으로써, 나기의 출생 비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주고 있다. 

한국정식판에 불만이 있다면 일단 컬러 화보를 무지막지하게도 흑백으로 출판해서 그림 전체가 그냥 희뿌옇게 나오거나 아님 그냥 시커멓게 나와서 도데체 뭐가 뭔지 알수가 없게 되었다. 돈을 좀더 내더라도 제대로된 그림을 보고싶은건 나혼자만의 바람인가? 한때 바사라 애장판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서 정말 기대 했었는데, 애장판으로 컬러 그림을 보고싶다는 나의 소망은 요원하기만 하다.  또 다른 불만이라면, 18금을 면하기 위해 맘대로 바꿔버린 번역인데, 조금이라도 성적인 표현을 번역가(출판사)가 맘대로 바꿔버린거 정말 싫다. 일본판 15권 읽어 보신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실듯...

좀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 출판사가 자신들 생각에 노골적인 표현을 완화시킨 것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파라다이스 키스' 같은 만화를 보면 '피니시가 빨라서 미안'같은 대사도 버젓이 나오던데, 서울문화사 (바사라의 정식 한국어권 출판사) 가 너무 겁먹은게 아닌가 싶다. 만화/도서를 검열한다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도데체 누가 누구의 잣대로 이건 읽어도 되고 저건 읽으면 않된다는 건가?), 현실적으로 심의위원회가 존재하고 있고 출판사는 거기 눈치를 봐야 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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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헤드 10 - 완결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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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의 터널안에서의 수학여행 열차사고의 아수라장이 주는 공포와 충격은 내가 접해본 책/영화/회화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에 든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바로 조금전까지 살아 숨쉬며 웃고 까불던 다정한 친구들이 순식간에 시체의 산으로돌변하고, 간신히 찾아낸 다른 2명의 생존자들은 주인공 소년의'고독'의 공포는 어느 정도 해소해주지만 그들역시 폐쇄된 공간에서의 암흑과 침묵의 공포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소년은 밀실 (붕괴된 터널)을 나와서 열린 공간 (터널 밖 세상)으로 가지만, 그곳에서는 조직화된 야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 이다.

작가는 인간의 심리/감정중에서도 '공포'와 '호기심'을 처음 1권부터 10권까지 파헤치고 있다. '드래곤 헤드'를 읽으면서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 떠 올린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것이다. '드래곤 헤드' 에서는 '파리 대왕'처럼 극한 상황속에서 인간의 사회성이 어떻해 파괴되고, 본능과 야만이 살아남는가의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공포를 묘사한다. 그런데 이 '공포' 는 알수없는 어떤 사건의 산물이기에 자연스럽게 '호기심 -알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소년과 소녀는 무엇이 이런 엄청난 대재앙을 불러왔는가하는 호기심에 동쪽으로 향한다. 그들이 무수한 고통과 험난한 장애를 이겨내고 끝끝내 토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이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재앙의 원인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었을까?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호기심 여행에 동행하게 하나, 10권 끝까지 재앙의 원인을 알려 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천재지변의 원인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우리의 히어로와 히로인은 그들의 생존에 동기를 부여해오던 '호기심'을 잃게 된다. 따라서 작가는 호기심을 대신할 다른 동기를 찾아내야하는데, 그러면 만화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될테고...

작가는 공포에 인간이 어떻해 대처 하는지를 보여준다. 공포에 시달리다 못해 공포 그 자체가 되기로 마음 먹는 소년, 공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뜻한 동정심과 분별력을 유지하는 여선생님, 공포에 미쳐 살인광으로 돌변한 마을 사람들,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기위해 뇌를 절제한 남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포에 부닥칠 수록 더 생존에의 욕구가 강해 져서 번식의 욕구가 늘어나게 될것 같은데 '드래곤 헤드' 에선 소녀를 강제로 범하려는 자위대 병사외에는 그러한 예가 없어서 약간 의아하기도 하다. 번식의 수단으로서의 강간은 비난 받아야 마땅할 일이라 작가가 다루지 않은지도 모르겠지만, 만화에 등장하는 살인, 방화도 도덕심의 붕괴라는 측면에선 막상막하 일텐데. 어쨌든 통제 불능의 재난속에서 인간의 심리가 어떻해 유지,변화, 또는 파괴되는가를 그린 뛰어난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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