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Chesil Beach (Paperback)
Ian McEwan / Anchor 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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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2007년에 처음으로 발간된 장편 소설. 에드워드라는 한 남자와 플로렌스라는 한 여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적 배경은 1962년, 히피 문화가 폭발하기 전 정숙함과 배려등 고전적인 전통이 아직 강하게 요구되던 시기. 공간적 배경은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결혼식 직후 함께 떠난 가상의 여행지 바닷가다. 이 짤막한 장편 소설의 대부분은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결혼식 직후 갖게 된 첫번째 섹스에 대한 묘사에 할애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바이올린을 전공한 플로렌스는 남성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에드워드는 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와 자기안에 끓어 넘치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 둘 사이의 섹스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데,  플로렌스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자책감과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해변가로 도망치고, 에드워드는 그녀를 잡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 이 둘은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두개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다. <어톤먼트> 에서 강하게 발현된 우아한 시대극이 한 축이고, <암스테르담> 과 <새터데이> 에서 빛을 발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치밀한 심리 묘사가 다른 한 축이다. 즉 아주 큰 그림과 아주 작은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 모두 능한 작가라는 소리인데 이 얼마나 축복받은 재능인지. <On Chesil Beach> 에서 그는 후자쪽에 완전히 몰입하는 듯 하다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자신의 재능이 전혀 다른 곳에도 있음을 간단하고도 신속하게 드러낸다. 소설의 80% 는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벌어진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들이 행하는 행동과 그 속에 감춰진 심리들을 철저하고도 사려깊게 묘사하며 이와 동시에 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과거사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흐름은 겉잡을 수 없이 급박하게 변하고, 결국 마지막 몇장에서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르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감정 – 회환의 정서 – 까지 이끌어 낸다. 이 소설은 비극이다. 이건 큰 스포일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비극임을 알고 읽기 시작한다고 해서 읽는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작품의 흐름속에 깊게 빨려 들어가게 되고, 책장을 넘기는 재미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장에 이르러 일종의 반전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아, 이거 비극이었지, 하며 당황하게 된다. 문장은 극도의 만연체인데, 마치 GRE verbal 을 다시 치루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옆에 스마트폰을 열어 두고 계속해서 단어들을 찾아 가며 읽어야 했지만, 그런 고생을 통해 문장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 느끼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이 소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와 스스로에게 갇혀 버린 폐쇄성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 오는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그 슬픔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다.


여담. 내가 생각했던 그런 내용이 아니라서 처음엔 약간 당황했는데 야한 장면도 많이 나오고 (..) (그래도 생각만큼 야하지는 않았다) 워낙 좋은 문장들이 넘쳐 나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한국에 가지고 간 책들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거나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마다 틈틈이 읽어 나갔지만 절반 정도 남겨둔 채 다시 미국으로 가지고 오게 됐다. 만약 한국에서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삶은 또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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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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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 은 불멸에 대한 이야기다. 불멸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죽어야만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멸은 사랑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억되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섹스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는 사랑을 완성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을 통해 불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존주의적 사고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작가는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몇가지 인간 군상을 펼쳐 보인다. 괴테와 그를 사랑하는 베티나의 이야기, 아녜스와 그녀의 남편 폴, 동생 로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사후 세계에 존재하는 헤밍웨이와 괴테가 대화의 바톤을 이어 받아 담화를 이어나간다. 마지막장에는 루벤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것이 소설속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직접 소설의 화자로 참여한다. 친구인 교수와 함께 소설의 인물이 되어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류가 축적해 놓은 여러 유산들을 위에 쌓아 놓으며 불멸에 대해 논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소설이 된다. 흔히 이런 구조를 메타 픽션이라고 한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 작중 화자인 작가와 교수는 종종 자신들이 창조한 소설속의 인물들과 조우한다. 소설과 소설속 소설이 혼재되어 뒤섞여 들어간다. 소설속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코 소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소설의 주제는 불멸이다. 불멸을 욕망하는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이고, 소설과 소설속 소설을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존재” 는 불멸을 전제하는 가장 큰 개념이고, 이 소설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이기도 하다. 소설속 소설에 등장하는 아녜스와 로라, 폴, 괴테, 베티나, 루벤스는 각기 다른 존재의 이유를 가진다. 그들은 각기 다른 것을 욕망하며, 때로는 욕망을 잃어 버리기도 한다. 소설속 작중 화자의 말처럼 이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것에서 어떠한 가치도 발견해 내지 못한다. 그들은 존재하기를 갈구하며, 존재한다는 자각 위에서만 욕망하고 불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하며, 죽음을 기다린다. 모든 사람은 죽어야만 한다는 대전제를 받아 들이면서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이들을 이끈다. 단지 삶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은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에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 못했을 때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자신이 확신하는 답을 마음속에 지닌채 죽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 소설 – 과 소설속 소설 – 을 읽는 이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작중 인물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그에게 동화되어 그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글읽기에서 벗어나 한발 더 나아간 글읽기 방식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읽는 이가 등장인물들을 한켠으로 밀어 내고 자기 자신을 주체적인 자리에 놓은 후 적극적으로 성찰을 해야만 이 소설을 온전히 받아 들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형식적으로도 이 소설은 굉장히 흥미롭다. 메타 픽션안에서 소설속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소설속 소설의 인물들과 자유롭게 교감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쿤데라는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창조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그는 이 책에서 수많은 개념들을 소개하고 또 때로는 스스로 개념들을 만들어 내는데, 두세장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쳅터에서조차 네다섯개가 등장하는 이 개념들은 서로 충돌하는 법 없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이루어 나간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유한한 인간이 꿈꾸는 불멸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는 중간 중간 인물들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아주 새로운 전개가 펼쳐 진다고 해서 그 인물들이 뒤틀리거나 왜곡되지 않아 보인다는 건 퍽 놀라운 일이다. 아녜스는 정말 그녀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충분히 납득될 만한 삶을 살아 가며, 그녀의 동생 로라또한 그러하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기묘하게도 인간의 역사 그 자체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쿤데라는 아주 평범한 삶을 그리는 와중에 인간의 가장 심오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러면서도 형식적인 재미와 지적인 자극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아주 멋진 수다쟁이이며, 탁월한 이야기꾼임과 동시에 깊은 사유를 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쿤데라의 <불멸> 을 이야기할 때 레퍼런스로 등장할 법한 이름들은 폴 오스터와 홍상수다. 물론 쿤데라가 먼저다. 하지만 오스터는 형식과 문법에서, 홍상수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이야기의 순환고리라는 측면에서 한번 비교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은 한번 읽었다고 해서 완전히 이해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작 한번 읽었을 뿐이고, 몇번을 더 읽어야 겨우 이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꼬리라도 붙잡고 늘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몇장을 채 넘기지 않았는데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느낌은 허우샤오시엔의 <빨간 풍선> 을 보던 날 이후 꽤 오랜만에 가진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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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cturnes: Five Stories of Music and Nightfall (Paperback)
Ishiguro, Kazuo / Vintage Books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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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이야기가 수록된 중,단편집이다. <Never Let Me Go> 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정갈한 문체위에 각기 다른 다섯 – 혹은 다섯 이상의 – 뮤지션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황혼의 이혼을 앞둔 한 늙은 뮤지션이 최선을 다해 이제 곧 작별할 아내를 위해 불러줄 세레나데을 도와주는 이름없는 악사, 친구 커플의 다툼을 화해시키려는 한 친구, 볼품없이 변해가는 뮤지션 지망생에게 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온 늙은 여행객 뮤지션 부부,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뜨고 싶은 연주가, 그리고 젊은 첼리스트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주는 멘토. 다섯개의 짤막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음악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정상에서 내려오거나 정상을 아직 밟아 보지 않은,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을 약간은 쓸쓸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다. 한가지 억지로 더 꼽아 보자면 유럽에서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 각각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이기도 하고, 특정 인물에 의해 희미하게나마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처럼 앞뒤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지적 긴장감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느슨하고 가쁘지 않은 호흡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극적인 장치는 별로 없다. 그저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음악과 조우해 어떻게 좌절하고 또 어떤 식으로 희망을 되찾아 가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Never Let Me Go> 와 같은 사회를 꿰뚫어 보는 통찰보다는, 은근 슬쩍 드러나는 흐뭇한 미소 수준의 유머와 그 뒤에 찾아오는 씁쓸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나의 현재를 되돌아 보게 하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읽기 시작해 한국에 도착한 후 틈틈이 마저 읽어 내려갔다. 한국에서는 지하철도 너무 빠르고 사람들과의 약속도 촘촘히 박혀 있어서 진득이 앉아 페이지를 넘길 여유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책장이 잘 넘어 가지 않으면 은근히 초조함을 느끼는 편인데, 이 책의 마지막 챕터가 그랬다. 비록 두번째 소설이긴 하지만, 이시구로의 책은 다 읽고 난 후 마음이 풍성해 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의 간결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문장들이 좋다. 덧붙여, 이 책은 한국에서의 처음 열흘동안 내 마음이 무척 어지러울때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 편치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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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거기 있었다 2
윤태호 글 그림 / 팝툰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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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이끼> 이후 출판물의 형태로 나온 윤태호의 신작이다. 작년 여름쯤 초판이 나온 것 같다. 윤태호가 <야후> 이후 천착해 온 개인과 사회의 역학 관계에 대한 사유가 계속되는 듯 하다. <이끼> 에서는 작은 세계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는 임상 심리학적 관점을 가졌다면, <당신은 거기 있었다> 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사회안에서의 개인의 파괴행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인류학적/사회학적 관점이 느껴진다.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고차갑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연민과 걱정이 함께 한다. 책 뒷편에 짤막하게 소개된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근심어린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이 과연 올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들이 과거에 없던 형태의 괴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책의 한장 한장에 가득 서려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울 강남의 좋아보이는 아파트에서 한 가장이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을 가장한 타살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유족 한명 한명을 심리하면서 그동안 밝혀 지지 않았던 치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부인은 열다섯명의 남자와 외도를 하고, 자살한 남편은 그녀를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첫딸은 외과 의사인 지도교수와 불륜을 저지르고, 둘째딸은 사촌 오빠와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이 발각된다. 막내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노라 고백한다. 건실한 대기업의 성실한 임원으로 보여졌던 아버지는 정부가 있었고, 꽃뱀에 물려 회사 재산을 빼돌린다. 문제는 이러한 한 가족의 치부가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면서 가족이 파멸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인데, 이 모든 과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디자이너’ 의 존재가 작품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작가는 이 ‘콩가루’ 가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극히 가부장적인 위악스러운 가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단편적인 해석이 될 거다. 앞서 기술한 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이 아니라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디자이너’ 다. 그는 작가가 상정한, 뒤틀린 자아를 갖게 된 젊은이가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뒤틀린 자아는 절대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가 잉태한 것이다. 마치 <이끼> 에서 괴물같은 마을을 창조한 이장의 탄생과정과 흡사하다. 이를 막으려는 보통의 존재 – <이끼> 의 주인공 아버지, <당신은 거기 있었다> 의 수사반장 – 의 존재는 극히 미약하다. 이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절대악을 막지 못하는 늙어 버린 형사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다만 윤태호는 코맥 맥카시보다는 조금은 더 희망적인데, 결국 작품안에서 그 절대악의 끝을, 종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 “끝” 은 악을 상징하는 인물의 표면적인 죽음이 아니다. 사회가 품고 낳아 버린 이 악의 근원을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들리지 않는 희미한 숨소리같은 그 작은 바램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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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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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즈음해서 나온 최규석의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이번 신작은 A4 지 정도되는 큼직한 판본으로 나와 그의 수채화 솜씨를 조금 더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지방 작은 도시의 한 미술 입시학원을 배경으로 돈없는 집에서 그림그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입시학원 강사 경력이 꽤 되는 작가는 작중 태섭이라는 학원 강사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규석의 만화가 늘상 그러하듯, 이번 작품에서도 삶의 고단함과 사회의 불합리함속에서 피곤함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사려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00도씨> 에서 조금은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다시 작가 주위에 오밀 조밀 모여 있는 사랑스러운 이웃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 그의 작품들을 놓치지 않고 보아 오면서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고, 단 한번도 갸우뚱거렸던 기억조차 없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반듯한 마음가짐이라는 간단한 교훈을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재확인한다.

우리네 일상은 녹록치 않다. 돈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권력에 치인다. 고개를 들어 보면 내 위에는 누군가가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고, 단 하루도 돈의 속박에서 자유로웠던 날이 없다. 잠깐 쉬어 가고 싶어도 등뒤를 떠미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으며, 마치 지금 한걸음을 마저 떼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까지 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친구들처럼 우리가 시덥잖은 유머를 날리며 오늘도 웃을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잃지 않고 가지고 있는 꿈이 될 수도 있다. "불가촉 루저" 인 원빈이 강사의 크로키를 보고 "학원 오기 잘했다" 생각하며 씩 웃을 때의 그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캐치해 내는 작가의 시선을 사랑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큰 고비 하나를 넘지 못해 지금까지 애써 지켜왔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다다른 원빈이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릴 때 그를 쳐다보는 학원 강사의 눈빛을 담담히 담아 내는 작가의 손끝이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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