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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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 은 불멸에 대한 이야기다. 불멸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죽어야만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멸은 사랑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억되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섹스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는 사랑을 완성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을 통해 불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존주의적 사고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작가는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몇가지 인간 군상을 펼쳐 보인다. 괴테와 그를 사랑하는 베티나의 이야기, 아녜스와 그녀의 남편 폴, 동생 로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사후 세계에 존재하는 헤밍웨이와 괴테가 대화의 바톤을 이어 받아 담화를 이어나간다. 마지막장에는 루벤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것이 소설속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직접 소설의 화자로 참여한다. 친구인 교수와 함께 소설의 인물이 되어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류가 축적해 놓은 여러 유산들을 위에 쌓아 놓으며 불멸에 대해 논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소설이 된다. 흔히 이런 구조를 메타 픽션이라고 한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 작중 화자인 작가와 교수는 종종 자신들이 창조한 소설속의 인물들과 조우한다. 소설과 소설속 소설이 혼재되어 뒤섞여 들어간다. 소설속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코 소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소설의 주제는 불멸이다. 불멸을 욕망하는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이고, 소설과 소설속 소설을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존재” 는 불멸을 전제하는 가장 큰 개념이고, 이 소설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이기도 하다. 소설속 소설에 등장하는 아녜스와 로라, 폴, 괴테, 베티나, 루벤스는 각기 다른 존재의 이유를 가진다. 그들은 각기 다른 것을 욕망하며, 때로는 욕망을 잃어 버리기도 한다. 소설속 작중 화자의 말처럼 이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것에서 어떠한 가치도 발견해 내지 못한다. 그들은 존재하기를 갈구하며, 존재한다는 자각 위에서만 욕망하고 불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하며, 죽음을 기다린다. 모든 사람은 죽어야만 한다는 대전제를 받아 들이면서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이들을 이끈다. 단지 삶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은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에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 못했을 때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자신이 확신하는 답을 마음속에 지닌채 죽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 소설 – 과 소설속 소설 – 을 읽는 이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작중 인물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그에게 동화되어 그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글읽기에서 벗어나 한발 더 나아간 글읽기 방식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읽는 이가 등장인물들을 한켠으로 밀어 내고 자기 자신을 주체적인 자리에 놓은 후 적극적으로 성찰을 해야만 이 소설을 온전히 받아 들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형식적으로도 이 소설은 굉장히 흥미롭다. 메타 픽션안에서 소설속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소설속 소설의 인물들과 자유롭게 교감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쿤데라는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창조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그는 이 책에서 수많은 개념들을 소개하고 또 때로는 스스로 개념들을 만들어 내는데, 두세장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쳅터에서조차 네다섯개가 등장하는 이 개념들은 서로 충돌하는 법 없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이루어 나간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유한한 인간이 꿈꾸는 불멸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는 중간 중간 인물들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아주 새로운 전개가 펼쳐 진다고 해서 그 인물들이 뒤틀리거나 왜곡되지 않아 보인다는 건 퍽 놀라운 일이다. 아녜스는 정말 그녀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충분히 납득될 만한 삶을 살아 가며, 그녀의 동생 로라또한 그러하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기묘하게도 인간의 역사 그 자체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쿤데라는 아주 평범한 삶을 그리는 와중에 인간의 가장 심오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러면서도 형식적인 재미와 지적인 자극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아주 멋진 수다쟁이이며, 탁월한 이야기꾼임과 동시에 깊은 사유를 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쿤데라의 <불멸> 을 이야기할 때 레퍼런스로 등장할 법한 이름들은 폴 오스터와 홍상수다. 물론 쿤데라가 먼저다. 하지만 오스터는 형식과 문법에서, 홍상수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이야기의 순환고리라는 측면에서 한번 비교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은 한번 읽었다고 해서 완전히 이해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작 한번 읽었을 뿐이고, 몇번을 더 읽어야 겨우 이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꼬리라도 붙잡고 늘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몇장을 채 넘기지 않았는데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느낌은 허우샤오시엔의 <빨간 풍선> 을 보던 날 이후 꽤 오랜만에 가진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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