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펭귄클래식 10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토니 태너 서문, 이만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닉 캐러웨이는 중서부 출신으로 뉴욕에서 증권업에 종사한다. 그는 상류층은 잘 쳐다보지 않는 웨스트 에그에 거주하고, 그곳에서 매일 파티를 열어 사교를 즐기는 제이 개츠비와 전형적인 상류층 부부인 톰과 데이지 뷰캐넌 부부를 만난다. 닉 본인은 사교계의 flirt 조던 베이커에게 빠져 들고, 그는 바로 곁에서 개츠비가 어떻게 거짓된 삶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왔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렇게 형성된 재산을 이용해 과거의 사랑이었던 데이지를 되찾으려 하는지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닉은 개츠비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친구' 로서 남아 있게 된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정사는 결국 톰에게 발각되고, 톰은 자동차 수리공 윌슨을 교사해 개츠비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는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 후 그의 장례식을 주관하고, 조던에게 버림받은 후 뉴욕을 떠나 본인의 고향인 중서부로 돌아간다.

팽귄 클래식 번역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수험생 시절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읽었던 게 벌써 십년도 더 된 기억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만큼, 이제 작품의 화자인 닉의 나이에 가까워진 지금, 개츠비를 읽는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하며 또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처음 발간된지 약 8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 작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를 지닌 고전의 미덕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끔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대로 작품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허투루 읽을 부분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짧은 기간동안의 한 사건에 집중하면서 중편에 가까운 구성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사회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데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로 대비되는 공간 개념부터 주인공 닉이 처한 위치,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전후 '버블' 이 극으로 치달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술에 취한 듯한 사회상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닉과 개츠비는 뉴욕 출신이 아닌, 중서부 출신으로 "상류 사회가 덜 선호하던" 웨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전통적인 뉴욕 상류층 출신인 톰과 데이지 부부는 이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이 두 집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집단 허영심과 도덕적 공황상태를 충실하게 대변한다. 톰에게 이용당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마는 하류층 윌슨까지 동원되어 사회의 모습을 묘사해 낸다. 계층간 대립과 계층 내부의 부패, 그리고 그 계층 구조의 덧없음까지 문장 한땀 한땀에 진하게 베어 나온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잔인한 좌절의 늪으로 몰고 간 것일까? 돈과 자본주의 사회,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망, 보여지는 것에 대한 굴복과 물질에 대한 복종. 그 모든 것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지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우리는 개츠비와 닉이 빠졌던 늪에서 완벼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개츠비는 데이지앞에서 참으로 낭만적이었고 철이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면서도, 재산 형성 과정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비뚤어진 욕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데, 혹 우리는 그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즉 왜곡된 가치를 스스로에게 주입해 그릇된 자기 정당화를 가져오지 않는가 말이다.

책에는 작품에 대한 대단히 좋은 해설인 토니 태너의 서문과 에스콰이어에 연재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수필 <무너져 내리다> 가 함께 수록되어 그의 문학적 배경을 짐작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만식 옮김. 2009년 1판 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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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년도 더 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그때는 어떤 느낌이었어요? 나는 이십대 중반에 처음 읽었는데 재미도 없고 무슨말인지도 몰라서 내팽개쳤었거든요. 무라카히 하루키의『상실의 시대』에 끊임없이 개츠비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읽었었는데.. 그런데 그 뒤로 친구에게 빌려줬는데 친구가 엄청 재미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읽었죠. 여전히 왜 재미있다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가다 몇년 지나서 세번째로 다시 읽어봤는데, 와, 엄청 좋더군요! 뭐가 어떻게 좋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어요. 그래서 피츠제럴드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고 그러다가 단편집을 읽었는데, 피츠제럴드는 단편에 더 천재였어요! 저는 개츠비보다도 그의 단편에 완전 반해버렸어요.

근사해요, 피츠제럴드는.

jongheuk 2011-01-11 14:2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인데요, 피츠제럴드는 세상에 많이 찌들고 더 많이 서글픈 인생을 살 수록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십대들이 읽기에는 적절치 않죠. 단편도 시간날 때마다 잘 읽고 있어요. 단편도 무척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