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프 : 이 정도면 충분해
제프 시나바거 지음, 이지혜 옮김 / 옐로브릭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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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변은 어찌나 풍족한지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나도 모른 채로 구매욕구의 함정에 빠져든다. (구매뿐만일까?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집중을 못하게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잡다한 이슈들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며 모든 영향력을 지배하려 든다) 한창 ‘지름신’과 ‘기업의 노예’라는 용어를 통해 스스로를 자학하는 현실의 자아를 살피는 대중의 행위는 끊임없는 구매의 루프에 빠진 개인을 묘사하는 더 이상 위트 있는 표현만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상업주의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매우 고달프다. 시간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광고의 재빠른 사탕발림은 혀를 내두르는 매끄러운 유혹으로 변모하여 단순한 편의를 필요로 만드는 사고의 제어를 급발진시킨다. 찰나의 순간은 그들에게 기회이자 절호의 전환점이다. 나의 사고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기획된 것인지 판단의 법정이 열리기도 전에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결제시스템은 아주 간단하고 사뿐한 봄바람처럼 내 마음에 잠시나마 영원할 것 같은 훈풍을 일으킨다.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제한하고 주변을 바라보며 베풀라는 작가의 철학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착하다. 이미 서점에는 절판되고 도서관에서도 서고를 뒤지는 사서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 아마 무시무시한 욕구로 가득 찬 현실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 힘든 이 책의 의미 때문은 아닐까. 

고고하게 서서 풍성한 혹은 그 이상을 넘어 넘쳐나는 모든 것들에 거부의사를 표하고, 풍족함을 나누며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사상은 현실에서 파면되어 마땅한 불순한 의도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반기를 들고 싶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계속해서 사야 하는지, 누군가가 입고 누군가가 쓰고 멋들어지게 가공된 그들을 보며 나 또한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하게 모두가 이상향을 넘어 단순히 이상해졌다. 광고와 미디어는 맹목적으로 한 지점을 향해 스테레오타입으로 존재해야 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며 삶이 갖춰야 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늘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상태로 개인을 평가절하하며 소비자를 업그레이드와 개선이 매 순간 이뤄져야 하는 모자란 인간으로 대중을 평가한다.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기업의 불순한 의도는 날것 그대로 괴팍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한껏 포장된 가상의 가공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가상인간이 되기를 늘 영혼 없이 끌려다닌다. 나는 신기술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기업의 멋들어진 설명회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의 상품을 꿈꾸며 나의 현실을 비관했다. 저것만 소유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완벽한 존재에 조금이라도 완성을 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세계 환경의 날’을 특집으로 쇼핑을 권고하는 노골적인 포털사이트의 특별 팝업창을 바라보며, 녹색 그림으로 뒤덮어 사람들의 사고를 혼탁하게 모호하게 흔드는 맹목적인 소비의 촉진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지구를 위한 아이템이라고 소개하며, 지금도 넘쳐나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더욱 완고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쓰레기를 선사한다. 매끄럽고 친환경과 에코, 자연소재라는 이명하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들을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필요의 재화로 둔갑시키면서 결국은 소비자일 뿐 생각하는 소비자로 개인을 착각을 시키며 또 다른 꼭두각시를 만들고자 의도했다. 이렇듯 도처에 널린 보이지 않는 소비의 지뢰가 개인을 길들이기 위해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조금 과거에는 당연했고 사람들을 위하며 주변을 따스하게 바라보던 시선들이 사라짐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 도시가 발달해서, 개인주의가 자리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소멸해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우리는 모든 일이 점점 돈으로 해결되는 개인적인 방식이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감정마저도 수치로 환산 가능한 시스템에 맞춰 인간이 인간 되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기획된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의도에 풍요를 인정하고 주위를 바라보고자 하는 행동이 그들에게 오류로 인식되어 존재의 바이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 시작은 나에게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말하는 작은 행동은 바로 이곳에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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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옷장 -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고민
박진영.신하나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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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이라는 불쾌한 목적을 드러내지 않아도 누구나 지구를 말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그게 상업을 위한 불순한 목적일지언정. 패스트패션이 지속가능성을 제창하며 옷을 수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페트병을 순환해서 옷감으로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는 일부러 광고하지 않아도 너무 진부한 비영리활동처럼 보여서 오히려 도태한 유행처럼 취급될 정도이다. 결론은 사지 않으면 된다. 티셔츠, 바지 집에 나갈 때 몸을 휘감는 그 옷조각이 우리는 부족해서 매일 새로운 옷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입고 나온 타인의 욕망이 나에게 비쳐서 나도 모르는 욕망을 부추기기에, 스스로만 자각하는 자존감이 겉모습을 향한 부족한 외면에 휘둘려 나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최신 유행을 좇고 있다. 먹는 음식과 다르게 하나의 옷이 어디서 출발해서 내 손으로 쥐어지게 된 지 나는 막연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오늘의 식사야 따져보고 고른 식재료를 통해 요리하면 어느 정도 내가 관여했다는 기록이라는 뿌듯함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옷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보통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손재주를 부여하지 않는다. 기성제품으로 구성된 다양한 브랜드의 컬렉션을 통해 한 해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을 한다. 옆사람이 뭘 입었는지 저기 지나가는 사람은 어떤 셔츠를,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기웃거리는 것도 부족한 나의 관점을 채우려는 방어일 뿐이다. 때문에 원단이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고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제조되었는지 관심을 둘 턱이 없다. 싸고 목적성에 맞는 이미지로 나를 완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쌓여가는 옷감이 집에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집착하는 패션활동은 조금도 회한의 여지를 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분명 고쳐 입고 물려 입고했던 기억이 있는데 고장 난 기록의 메모리칩처럼 나는 과거 속으로 모든 걸 뒤로했다. 오늘 이렇게 깨달았다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의 여지를 둘 수 있다면 그걸로 일보 전진한 나의 의지에 칭찬을 보내지 않을 이유는 또 없다. 별거 아닌 생활의 움직임이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잣대도 아니고 단순히 내가 원해서 마음이 끌리기에 관심을 둔다면 나는 충분히 지구를 살리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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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목욕탕
6699press 편집부 지음, 박현성 사진 / 6699press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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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목욕탕’의 작가가 추천한 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마 이 책의 기록에 남긴 장소들은 대부분 많이 없어졌다고 단언한다. 코로나 이후로 많은 목욕탕이 재정난에 빠진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에서 화자 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종식된 코로나가 당연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된다. 이제는 이렇게 지면으로 동네 목욕탕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된 것일까? 30년 이상을 운영해 온 서울 곳곳의 목욕탕 리스트가 책의 색인처럼 후면에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가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동네에서 마주한 익숙해진 상호명이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안심했다.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그곳이 박물관의 오래된 유물처럼 신기하면서도 여전히 가볼 수 있는 친근한 장소라는 이유에서 마음이 한결 놓인다. 아마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세월의 변화를 적응이라는 단순한 습관으로 치부하지 않더라도 기억은 그곳에 머물렀을 때 더 소중하고 귀하다. 지금이 그 귀하고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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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목욕탕 - 마음의 부드러운 결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씻긴다 아무튼 시리즈 36
정혜덕 지음 / 위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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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따라갔다. 목욕이야 집에서 샤워로 마치면 될 텐데 구태여 탕에 들어가서 마음을 씻는다는 그의 주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에 웬만한 집에는 욕조가 없다. 1인가구인 탓에 집이 좁은 이유도 있겠지만 생활방식이 욕조 문화와 점점 멀어진듯한 인상이 더 강해 목욕방식이 내가 어렸을 적에 익히 알고 있던 방식과 함께 세월은 변화하지 않았을지 추측해 본다. 사우나와 찜질방이 아닌 목욕탕만을 고집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겨 있는 이 한 권은 목욕탕에 관한 한 가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비누를 밝고 미끄러진 온천탕의 아름다운 사고가 떠올랐고 작가는 시부모의 목욕탕 운영을 운명으로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목욕탕을 사랑했다. 몸을 씻는다는 숭고한 행위가 나 자신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위안의 시간이 됨은 저명하다. 그 사소한 개인의 시간마저 사치로 취급되는 요즘에 이르러서야 점점 사라지는 동네 목욕탕의 존재가 귀하고 애틋했다. 이와는 반대로 휘황찬란하게 바뀌어가는 대형 스파와의 대결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목욕하지 못한 하루의 무게만큼이나 찝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나는 아마 이 책을 덮으며 친구를 꼬드겨 이번 주에는 목욕탕에 가겠다 생각했다. 동네 골목에 숨겨진 아직 남아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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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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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에 대해 아는것이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홀로코스트, 전쟁, 분쟁, 분쟁 그리고 분쟁… 아무리 생각해도 유머러스한 유대인은 미국시트콤 ‘프렌즈’의 ‘로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딱히 그가 유대인이라서 그렇다기보다 (하지만 많은 에피소드가 유대인의 ‘로스’역할로 꾸려지긴했다) 훌륭하고 재밌는 배우이었기에 (그는 미국인) 이스라엘이 바로 연상되는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작가도 이스라엘 출신이기에 뛰어난 글 솜씨가 있는것은 아니고 그냥 작가 자신이 특출난 재능이 있기때문은 아닐까. 국적의 의미를 구태여 점검하지 않으면 안 돨 정도로 글을 통해 그가 사는 환경과 마주하는 상황이 매우 낯설다. 나는 종종 서구에서 분쟁지역인 한반도를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혹은 이미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묘사하며 전쟁국가로 오해를 삼는다 들었다. (미사일의 뉴스에 노발대발되며 흥분을 일으키는 건 자국이 아니라 타국의 뉴스인것 같다) 아마 그런 관심없는 무지한 오해탓에 상황을 곡해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상황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뉴스로 바라본 미디어의 관점은 많은 부분에서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작가는 우수꽝스럽게 (하지만 매우 계획적인 예리함으로) 일상을 풀어헤친다. 이미 나는 그의 글을 후루룩 따라가는 동시에 입가에는 웃을 준비를 장착한 기대감에 차있다. 그가 웃기지 않는 발언을 할지언정 나는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단순히 작가의 글을 읽는 다는 이유만으로) 이 점에서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필력을 가진 사람인지 알게 되는데, 본격적으로 웃기려는 글을 쓴다는 목적만으로 쉽사리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작가가 글을 쓴지 25년 이력가운데 출판한 첫 에세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기에 히브리어(모국어)로 출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연 이 괴상하고 독특한 작가를 나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분쟁의 우려스러운 문제들도, 아내와의 황망한 에피소드도 그리고 아이의 사랑스런 성장과정도 하나 빼먹지 않고 작가 앞에서는 모든 것이 훌륭한 인생이고 대단한 발견인듯 해보였다. 나는 이렇게 또 대단한 거장을 만나고 파해쳐 나갈 새로운 생각을 가진 작가를 만났다는 점에 마냥 기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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