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쉬운 글이 아니다. 나는 고민했다.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들이 반 이상 이해가 되었는지 조차 조금 헷갈릴 정도로 반문하며 책을 덮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섯번이나 졸아야 했다. 어려운 내용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따라가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인해 나는 챕터가 넘어가는 틈을 타 휴식이 필요했다. 타이틀만 보면 답을 알려줄것 같아보였는데, 저자 또한 모호한 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다시보니 “~될것이다.”라고 정리한 제목은 확신은 없는 늬앙스였다. 그만큼 굉장히 까다롭고 예민한 주제이며,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급격한 유동성을 안고 있는 주제였다. 챕터를 넘어감에 있어서 흥미를 끌었던것은 오히려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열심히 연구해오고있는 지구공학에 대해서였다. 으레 재난영화에 한명쯤은 꼭 나오는 교수역할을 담당할 것 만 같은 분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고스란히 담아있다. 저자는 조금 독자를 지식이 높은 관점에서 과대평가하고는 있지만 나 같은 독자들도 있음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분야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르는 자연스러운 개념들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낮설어 오히려 거부감까지 느끼게 한다. 저자도 우려를 했는지 나름 쉬운 개념에 빗대어 차근차근 설명하려는 노력이 보여서 낯선 용어들 사이에서 헤메이고 있는 나는 감사하기까지 했다.이 책은 기후변화에 앞서 개개인이 해야할 작은 실천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분리수거를 하라, 고기 섭취를 지양하라와 같은 세밀한 디테일은 이미 누군가가 제창한 캠페인으로 모두에게 뒤엉켜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지금의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대략적인 개념에 있어 동조하기를 원한다. 기초적인 배경이해 없이 우리는 왜 그들이 그렇게 위기를 조성하면서까지 미래를 어둡게 바라보지않으면 안되는지 알 수 없다. 이건 학자들이 말하는 나름의 눈물겨운 경고이지 않은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다. 조그마한 씨앗을 내릴 수 있다면 지구를 위한 생각은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물건은 정말 알 수 없는 세계로 그 자체로 그야말로 요물지다. 소유하지 못하면 갖고 싶어 그렇게 갈망하다가도 막상 손에 쥐에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흥미가 사그라든다. 넘처나는 물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하루하루를 욕망의 저울질로 아슬아슬하게 생명연장하듯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물질의 본능에 이끌려 오늘하루를 보낸다. 쓸모있는 도구로써 물건이 존재하는 의미는 이미 그 역할이 퇴색된지 오래. 언제는 과시를 위해, 혹은 사회속에 동화되기 위해 사람들은 물건을 소유하고 얻는다. 그건 감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며 마치 삶의 목적이 그 전부인것 처럼 소비행위만이 유일한 의미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소비하기위해 사는건지 사는것을 증명하기위해 소비를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건지 오락가락한 밧줄위에 아슬아슬하게 우리는 버티고있다. 소비라는건 무엇일까. 물건을 대하는 나와 물건이 반추하는 나는 무엇일까. 오늘도 욕망에 벗어나지 못해 스크롤을 올리며 연신 물건을 검색하는 나는 그 물음에 답할길 없이 소비에 빠져든다.
책을 덮고 그냥 막연하게 든 생각은, 적어도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은 꼭 읽어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탄성화”, “소성적사고” 등등 뭔가 디자이너로서 있어보이려는 개념을 가시화하려 노력하지만 그건 그냥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언어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시도처럼 보여지고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본질은 그러한 단어 자체에 깃들여있지않다. 오히려 와닿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무시해도 좋을듯 하다. 파헤쳐야 완성된 만족감을 얻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되있을 뿐, 꼭 그가 말하는 모든것이 디자인사고의 바이블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의 얘기에 동의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오히려 각자의 관점에서 읽어 내려가는것을 작가도 원하지 않으려나 생각했다. 본인의 작업과정에 빗대어 일례를 드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다소 챕터가 적어서 아쉬웠지만, 필드에서 적용되는 과정이 꽤 세세하고 디테일해서 마치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한 멤버같이 느껴지기까지했다. 이런 귀한 얘기들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없는 중요한 경험이다.작가가 지금까지해온 작업들이 이해가되고 왜 앞으로 그런고민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다소 지금의 위치에 있기에 위로부터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얘기하는건 조금 지양했으면 좋겠다. 대중들이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바보는 아니기에. 후기에서 보여준 시사점으로 그는 디자이너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로서 다른 세대에 또 다른 영향력을 끼칠수 있는 형태로 다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게된다.
부제에 거창하게 대롱대롱 달린 “워크스타일3.0”이란 대단한 수식어는 무엇을 위한 목적이었을까?“우리는 이런식으로 일해요”라고 주절거리는 한 권이지만 본질은 얘기안하고 이상만 줄줄이 늘어놓기만한다. 결국 그에 수반하는 부정적인 결과나 의견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아, 목적이 오히려 더 수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런 환상동화를 읽으려고 집어든 책은 아니었다. 누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경제력으로 뒷받침되길 마다하지 않겠는가. 그런 당연한 얘기를 듣고싶어서 사람들이 여유부리는건 아니다. 고리타분한 회사에 소속된 사회초년생이 읽고 무책임하게 퇴사해버리기 쉬운 지침서. 이런 이상적인 대단함은 여유가 단단히 뒷받침되는 어떤 특정집단을 위한 사유물임을 분명히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 책을 자연스레 집어든 분들은 키키 키린을 좋아하거나, 작품속에서 배우로 관심있게 지켜본 분들 이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한 배우의 인터뷰는 매우 낯설고 어렵다. 나 또한 키키 키린을 최근의 몇몇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기에 이 전의 단역과 TV프로그램의 기억들은 전혀없다. 때문에 과거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배우에 이르는 이전 이야기들은 다소 독자로써 따라가기가 힘들다. 이 책이 챕터마다 미주를 몇 페이지나 할애할 정도로 매번 삽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냥 그러했을지 않았을까. 이런 말을 하는것은 아닐까 하고 안경쓰지 않은 흐릿한 감각으로 인터뷰를 짐작했다. 이 책은 키키 키린이 대략적으로나마 실제로는 얼마나 까탈로운 사람인지, 그녀가 연기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대략적으로 엿보면서 더이상 새로운 작품으로는 이 배우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다. 추도문으로 마무리되는 한 권처럼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리기위해 마련된 글들이다.